추석 연휴에

by 우선열




추석 연휴에

길게만 느껴지던 열흘이 훌쩍 넘는 연휴도 어느새 반을 넘어가 버렸다.

명절 전 날들이야 명절맞이 준비로 바쁘게 보내더라도

오롯이 빈 시간이라 여겼던 대체 휴일만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일상이라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수레바퀴 속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누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살아가노라면 종종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빠져들게 된다.

어머니, 형제, 이웃, 동료,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행인의 역할도 있다.

어쩌다 군중심리에 휘말릴 때의 내 모습은 나조차 낯설기도 하다


시간에 따른 변화도 있다.

늘 같은 듯하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변화에 적응해나갈 뿐이다

"누이는 어찌 그리 어머님 모습과 똑같소"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동생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엉뚱하게도

" 이젠 동창회도 못 간다, 나오는 사람이 없어"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내 나이쯤의 일이다.


이제는 나도 윗세대들의 부음이 아니라 또래 들의 부음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해 왔건만 이들을 깨닫는 건 어느 순간의 일이다.

일상에서 보지 못하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이 만들어 준 자리에 서게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독설가의 말이라지만 독설일 수만은 없다

누군가 한번은 직면하는 장면이리라

준비를 단단히 한다 해도 피해 갈 수는 없는 순간이다


생로병사의 한 과정이라면 결괏값이 그리 특별 할리는 없다

어느 정도의 바운더리를 정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그리 쉽게 짐작할 수는 없다

때로 이름난 고승들이 열반 일자를 미리 알아 대비한다지만

일반화할 수 없을뿐더러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있고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삶이 선택의 연속이듯 죽음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일고 있다.

무기력한 마지막에 대한 대안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만은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단 늘 한계가 있다

생로병사의 고정은 정해져 있지만 시기는 각자 다르고 그 이유도 모른다

대자연의 섭리로 이해하려 한다


결국 정체성은 일괄적일 수만은 없다

그때그때 달라져야 한다

내 정체성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의 내 모습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순간순간 주어진 인연에 충실하는 것뿐이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 해도 마지막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나를 찾기 위해서는 같이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 언니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