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요, 손이 가.”
한때 국민 과자로 불리던 과자이다. 선풍적인 인기로 등장한 뒤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입맛이 변해 달콤한 쿠키나 사탕에는 관심이 사라졌지만, 이 과자만은 봉지를 뜯는 순간 마지막 한 알까지 손이 멈추지 않는다.
트랜스 지방이니 고칼로리니 하는 부정적인 단어들도 이때만큼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봉지를 비우고 깔깔해진 입안을 보며 “다신 안 먹어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과자를 사야 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 과자를 집어 들곤 했는데 이젠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요즘엔 과자를 찾을 만큼 입맛이 왕성하지 않다.
건강을 위해 세 끼를 거르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다행히 제철 과일을 좋아해 철마다 맛있는 과일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 실감난다.
가을이 되면 알밤처럼 몸매도 토실토실해진다
겨울을 준비하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위로하지만, 늘어나는 허리선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볼살이 통통해지면 좋으련만, 볼은 처지고 배만 튜브를 두른 것처럼 두리뭉실하다.
그러니 거울될수록 안 보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어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과일이 달아서 고칼로리래. 과일도 비만의 원인이래.”
이런 말로 제동을 걸어보지만 제철 과일 앞에서는 늘 마음이 약해진다.
특히 요즘 내가 즐기는 건 밤이다.
화로에 구워 먹던 군밤이 제격이지만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 삶은 밤으로 댜신한다,
며칠 전 지하철역 앞 노점에 지르르 윤기 나는 작은 밤들이 유혹하듯 놓여 있었다.
“산밤이네, 맛있겠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고 몇몇은 밤 봉지를 들고 있었다
딱딱한 껍질을 까야 하는 수고가 떠올라 망설였지만 어느새 내 손에도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가장 작은 단위로 샀건만 양이 넉넉하다.
소금물에 담가 쭉정이를 골라내고 1회분씩 나누어 담아 냉동해 두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지만 막상 손이 가지 않는 건 껍질 때문이다.
아이 이유식을 만들던 시절엔 손끝이 아픈 줄도 몰랐건만
나 혼자 먹을 밤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까야 하다니 지레 겁부터 난다.
우리 언니는 음식 솜씨가 좋다.
명절마다 가족들이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낫다”며 외식을 꺼릴 정도다.
요즘 고향에서 들고 온 추석 음식들이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려진다지만
언니네 음식은 아무리 넉넉히 해도 모자란다.
세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빠짐없이 장만하는 언니의 마음 덕분일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유난히 갈비찜이 맛있다며 언니가 불렀다.
기름진 음식인데도 담백하고 정갈했다.
잘 조려진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부재료인 밤과 감자에도 간이 잘 배어 있어 고기 맛이 났다.
하지만 내가 정작 젓가락을 멈추지 못한 건 삼색나물이었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평범한 재료였지만 고소한 들기름 향이 일품이었다.
나물들은 적당히 삶아져 꼬들꼬들한 식감이 살아 있었고, 잘게 손질되어 양념이 골고루 배어 있었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가 크기마저 비슷할 만큼 정성스레 다듬어져 있었다.
찢기 힘든 도라지도 하나하나 손으로 찢었을 것이다.
언니의 손맛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물 무치기는 정성의 손맛이다.
겉보기엔 단순한 반찬이지만 재료 손질에 많은 시간이 들고
손으로 물기를 꼭 짜내어야 베틀한 맛이 살아나고 조물조물 무치기도 손으로 해야 한다
그만큼 정성이 스며든다.
삼색나물에 이만한 정성을 쏟으니 언니 음식이 맛있는 건 당연했다.
그 나물들을 먹으며 나는 솜씨가 없다는 핑계로 가족 음식을 대충 만들지 않았나 반성했다.
아이를 키우던 시절엔 손끝 정성으로 밥상을 차렸지만 요즘은 혼자 먹는다는 이유로 대충 끼니를 때운다.
좋아하는 밤도 껍질 까기가 번거로워 멀리한다.
결국 다시 ‘손이 가는 과자’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과자보다 입이 먼저 깔깔해진다.
도망가는 입맛을 탓할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를 돌아봐야겠다.
내 인생은 내 것, 나만이 누릴 수 있다
대충 때우는 한 끼보다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야 한다.
지나간 식사는 다시 복구할 수 없고 지나간 시간도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언니에게는 둘도 없는 여동생이고, 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다.
이 가을엔 손쉽게 손이 가는 과자보다, 삶은 밤을 정성껏 삶아 예쁘게 까먹는 따뜻한 시간을 누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