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내려놓고 컴퓨터 쓰면 되지 뭐."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에 무심코 입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휴대폰 대신 컴퓨터라니, 이건 스스로 디지털 중독자임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나는 컴맹이라며 컴퓨터 사용을 두려워했다. 기계가 글씨도 쓰고 정보를 알려 주기도 하며 심지어 빠르게 계산도 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주산 1급 자격증 소지자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신기했지만, 인증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를 증명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나는 그냥 '나'인데 신분증 외에 또 다른 나를 증명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깔고 깔고 또 깔아야 하는' 인증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하곤 했다.
휴대폰도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이 전부였다. 그러다 사진기 기능을 이용하면서 부쩍 휴대폰과 가까워진 것 같다. 사진을 찍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예전 같으면 사진 찍고 인화해서 직접 가져다주어야 사진 한 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집집마다 커다란 액자에 가족사진을 넣어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 놓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은 즉석에서 찍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송해 주는 역할까지 단숨에 해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컴퓨터를 배워야 했다.
최근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컴퓨터를 모르면 불편해졌다. 밖에 나가서는 물 한 모금 사 마시기 힘들어졌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의 불편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워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알게 모르게 디지털 중독이 되어 갔다. 잠잘 시간만 빼놓고는 거의 한 순간도 휴대폰을 손에서 떼 놓지 못한다. 잘 알던 요리법도 검색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요즘에는 AI 사용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예전의 단순한 검색과는 달리 AI는 기능이 다양하다. 그림도 그려주고 일정과 계획을 잡아주기도 한다. 한 가지 정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보를 연동해 검색해 주기도 한다. 대화를 하며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짚어주기도 한다.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AI에게 물어봐야 안심이 된다.
눈을 뜰 때, 휴대폰 알람을 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잠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대중교통 안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폰 신호음을 무시하지 못한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아직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서 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젊은이들의 눈치를 보며 배워야 한다. 사각사각 책장 넘기며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휴대폰이 편리하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없고 너도나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젊은 사람들처럼 게임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중독자임을 고백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디지털 게임은 해보지도 못했다. 치매에 도움이 된다며 우리 또래 사람들이 열광하는 디지털 고스톱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디지털 기기로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고 있음을 고백한다.
전에는 블로그에 소비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제는 디지털 기기를 실생활에서 잠시도 떼어 놓을 수 없다. 시간이 가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지나친다. 디지털 기기 속의 꽃들이 예쁘기는 하지만 향기가 없다고 불평해 보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디지털 기기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발전한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떼어 놓을 수도 없고, 이대로 디지털의 노예가 될 수도 없다. 지금도 디지털 기기에 능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불편함에도 실생활에 사용하고는 있다. 디지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다가는 컴맹 시절처럼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컴맹은 단순히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초라해졌다. 다시는 디지털 기기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디지털 기기는 날로 새로워지고 발전해 나가는데, 까딱 방심하다가는 다시 소외되고 말지도 모른다. 과연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