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
가을의 상징인 높고 푸른 하늘 대신 가라앉은 음울한 회색빛 하늘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성미 급한 우리 동네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단풍 들기를 거부한 채 낙엽이 되어 거리에 흩어진다.
아직 나무 위엔 초록 잎이 무성하지만 거리엔 벌써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겉늙은 애늙은이처럼 계절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듯 어정쩡한 가을을 맞는다.
하긴 벌써 10월 중순.
늦더위가 아니었다면 가을이 제법 깊어졌을 시기다.
뚝 떨어진 기온은 늦더위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늦게까지 이어진 여름 더위 때문인지 올해 단풍은 예년보다 늦을 전망이다.
구름이 햇살을 가려 낮에도 좀처럼 기온이 오르지 않으니
올가을 단풍은 예년보다 덜 고울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며
가을의 상징인 고운 단풍도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대신 열대 식물이 넓게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겠다.
남녘의 황금 들판엔 가을이 깊건만 도심의 회색빛 날씨 속에선 가을도 눈치를 보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몸으로 느껴진다.
얼음조각 위에 표류하는 북극곰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닌 현실이다.
모든 변화엔 가속도가 붙는다.
인터넷 시대의 변화도 빠르다 했는데 AI 시대의 변화는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적응하면서 변화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면서 적응해야 한다니
이미 굳어진 신체와 정신이 따라잡기엔 벅찰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한들 시대가 나를 따라올 수는 없다.
내가 시대를 따라 흐르는 것이 순리이다.
나무는 짧아진 단풍 시기를 탓하지 않는다.
묵묵히 적응할 뿐이다.
짧은 단풍을 서운해하는 건 사람의 일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아름다울 수 있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인지하는 일이니,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단지 과거에 묶여서는 안 된다.
변화의 속도를 타되 방향키는 놓지 말아야 한다.
속도는 늦출 수 있지만 거꾸로 가면 두 배의 차이가 벌어진다.
‘나 때는 말이야’의 함정이다.
아름다운 단풍을 오래 볼 수 있었던 좋은 추억이 있으니 다행이다.
이제는 낙엽 밟는 소리를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손들은 그 소리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갔기에 더 아름답다.
오늘도 지나갈 것이며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아침, 하늘은 어둡지만 마음은 밝게 나만의 오늘을 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