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현금 지금 입금

자유를 선물하다

by 우선열


현금 지금 입금, 부모님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라고 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정성이 담겨야 한다는 ‘선물’의 기본 의도를 무시한, 황금만능주의의 전형이라며 불쾌해하기도 했다.

돈의 크기가 정성의 크기일 수 없다며 현금은 선물의 의미를 퇴색시킨 편의주의일 뿐이라고 분개했다.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당한 친구가 있다.

평소 부족함 없이 살았고, 마음씀씀이도 넉넉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주고받는 선물도 많았고, 상대의 취향에 꼭 맞는 선물을 고르는 센스도 있었다.

받은 선물을 재치 있게 활용해, 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도 했다.


그녀가 어느 날 조용히 나를 불렀다.

손에는 얼마 전 생일에 받은 고급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이번 생일에 받았어. 디자인도 예쁘고 재질도 좋아. 마음에 쏙 드는데...

지금은 돈이 필요해서 말이야, 중고로 팔아볼까 해.”

친구를 따라 중고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가방이었지만, 거래가는 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선물한 사람의 의도는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요긴하게 쓰였으니 됐어.

맛있는 음식 선물도 많은데 요즘은 경황이 없어서 그냥 버려지기도 해. 아깝고, 미안하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문득 작은어머니가 생각났다.


슬하에 사남매를 두고 부러운 것 없이 사셨지만,

늘 형편이 어려운 딸을 걱정하셨다.

아들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이런 건 필요 없다, 돈으로 주지.” 하시곤 했다.

그렇게 알뜰히 모은 돈을 틈만 나면 딸에게 건네셨다.


형제들은 우애가 좋았지만,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며느리들이나 다른 자식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받는 딸 역시 떳떳하지 않았다.


“작은어머니,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촌들이 서로 불편해하잖아요.”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래, 애들이 불편해하는 건 알아.

하지만 아들네 외식 한 끼 값이 딸네 한 달 부식비야. 그걸 아는데 마음이 편할 수가 있니.”

하셨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서로에게 정성스러운 선물을 하려다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부부의 이야기다.

감동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선물이기도 하다.


‘현금 지금 입금’이 성의 없고, 편의주의의 산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돈의 액수로 선물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그건 졸속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진심이 담길 수 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어머니들은 안주머니에 꽁꽁 숨겨둔 돈을

꼬깃꼬깃한 채로 자식 손에 쥐여 주곤 하셨다.

그 돈이 크지 않아도, 누구도 투정 부리지 않았다.

작은 액수 안에 어머니의 땀과 진심이 들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금 지금 입금’이 나쁜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문제일 뿐이다.

돈의 크기로만 가치를 재는 그릇된 시선 말이다.


크고 비싼 것이 꼭 좋은 선물은 아니다.

작고 보잘것없어도 진심이 담기면 오래 남는다.


현금에는 자유가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유이지만,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

친구가 핸드백을 팔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자유,

무용지물이 된 선물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말이다.


작은어머니의 쌈짓돈도 그랬다.

자식의 밥상에 생선 한 마리 올릴 수 있는 자유,

그 소박한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쌈짓돈을 기억하는 한, 현금이 커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간 정성의 크기가 더 크다.

‘현금 지금 입금’에도 그런 정성이 있고, 무엇보다 자유가 있다.


친구는 핸드백을 팔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작은어머니는 식사시간이 조금 더 따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