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기가 제법이다. 더위에 지쳐 잠 못 들던 밤이 엊그제 같은데, 옷깃을 파고드는 찬 기운은 반갑지만은 않다. 본격적인 난방을 하기엔 애매한 이때, 따스한 잠자리의 유혹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엎치락뒤치락 몇 번을 뒤척이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다. 이무렵 환절기 즈음이면 늘 겪는 일이다.
몸을 옹송그린 채 아침을 맞이하면 청정한 새벽 공기에 감도는 쌀쌀함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한다. 이불 킥을 감행한 내 육체가 고맙다. 이럴 땐 따뜻한 차 한 잔의 위로가 필요하다.
차를 준비하는 손끝이 정화수를 길어 올리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경건해진다. 고요한 대기 속에 물 끓는 소리가 퍼지고, 정체된 새벽 공기를 헤치며 김이 조용히 번져나간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손끝에서 퍼지는 열기에 몸이 따스해지고, 새벽의 찬 공기가 몽롱한 의식을 깨운다. 비로소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의 고요는 오롯이 내 것이다. 밤의 적막과는 다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엔 좋건 나쁘건 그날의 소회를 마주해야 한다. 정리해야 할 것들과 아직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뒤엉켜 몰려든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은 백지와 같다. 아직 아무의 손길도 닿지 않은 시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 된다.
이 시간에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새벽을 좋아하게 된 건지, 새벽이 좋아 글을 쓰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나 나조차도 잊고 지냈던 일이지만 희미하게나마 마음 한구석에 글을 써야 한다는 불씨 하나는 늘 있었던 것 같다.
새벽에 홀로 깨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앉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기 한 줄 쓰지 않던 무심한 내가 하얀 종이를 마주했을 때 느낀 막막함은 마치 절해고도에 홀로 떨어진 듯했다. 그 절박함이 오히려 나를 부추겼다. 오롯이 내게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지나가고, 지나간 날들이 떠오르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줄, 한 줄 글이 되어 나왔다.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와 손이 따라잡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고, 반대로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이 뒤엉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써놓고 보면 이게 무슨 글인가 싶은 날이 대부분이고 이따금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흡족한 날도 있다.
그런 결과에 집착했다면 오늘처럼 새벽 글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컴퓨터 자판만 바라보는 순간에도 새벽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이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벽이 좋은 건지, 글쓰기가 좋은 건지 굳이 따지지 않겠다. 이 시간의 효용가치에 대해서도 묻지 않겠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이 될지라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우체국 창문 앞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던 유치환 님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새벽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 나는 그대로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 따뜻한 차 한 잔의 위로가 있으니 더 바랄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