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파도가 덮치는 순간이 온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일이 허무하게 좌초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들이 그렇다. 그런 절망의 순간 내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때로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주문이기도 하다
"괜찮아, 액땜 했다 쳐."
이 말은 내게 일종의 심리적 '리셋 버튼'과 같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위안의 언어이다. 나 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실망에 찌든 일그러진 표정을 볼 때도 주저 없이 이 말을 건넨다.
사실 한때 이 말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던 적이 있다. 실패의 고통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운이 없었다'는 말로 덮어버리려는 가벼움은 아닐까?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을 '액땜'이라는 미명 아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나는 이 '액땜 했다 쳐' 라는 말로 큰 위안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외면이나 무시가 아니었다. 곪아 터진 심사를 마주 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 잘못이라해도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던 선배가 졸지에 사고를 당했다. 얽히고 설킨 인맥이 있었고 그 중심에 선배와 내가 있었다 . 모든 책임은 내게 돌아 왔고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니 사람들의 반응은 첨예했다.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반응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까지의 동료가 채권자가 되고 말았다. 망연자실, 갈 길 몰라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액땜했다 쳐, 더 큰일이 될 수도 있었어. 이만하면 됐어, 덕분에 사람을 제대로 볼 수도 있잖아"
비로소 당황하고 겁에 질렸던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이 말은 현재의 나쁜 사건이 '무의미한 사고'가 아니고 '더 큰 불운을 미리 막아낸 예방 주사 같았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 앞에서 종종 불안해하며 통제력을 잃는다. '액땜'으로 치부해 버리면 이 사건은 어떤 큰 흐름 속의 작은 희생이 되어 버린다 . '액땜'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 위로를 찾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실패에 빠진 사람은 흔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반추(反芻)하게 된다. 과거를 파고들며 자책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이 고통은 가장 비생산적인 감정 소모다.
"이미 지나간 일은 액을 때우는 데 사용되었다. 이제 더 큰 파국은 없을 테니, 미련 없이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자."
이말은 감정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말이다 .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 할 힘이 필요할 때, 과거의 고통에 휘말리는 대신 '이미 대가는 치렀다'고 선언하며 새로운 길로 나가게 한다.
절망에 빠진 이에게 억지로 '힘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걸음을 내디딜 최소한의 명분을 제공한다.
'액땜 했다 쳐'라는 나의 단순한 위로나 회피가 아닌 현실적이고 따뜻한 위로였다.
내가 겪은 아픔이 헛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말이었다.
하나의 미신적인 표현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이다.
"액땜 했다 쳐," 이 네글자가 나를 낙천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