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한
다사다난. 2025년 다이어리를 결산하는 한마디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어디 있으랴마는 올해가 특별한 이유는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시기를 지나왔다거나 한 번뿐인 부모님을 잃는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이었다. 70나이가 무색하게 지난 10월 나는 한국수필 신인상을 탔다. 앞으로 나를 소개하는 글에 늘 따라다니는 이력이 될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내 2025년의 기록은 온통 신인상 수상에 집중된다. 등단을 목표로 글쓰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글쓰기에 등록하여 공부를 하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고 관문이 등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문학계에 나이 든 사람들의 등단 열풍이 거세어 문단의 노쇠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내 마음과는 무관하리라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며 정해진 틀안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게 된다. 글을 쓰려면 등단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나이 든 사람이라도 특혜는 없다. 문단에서 나는 신인일 뿐이다.그러나 이 나이에 듣는 신인이라는 말이 나쁘지는 않다. '이 나이에 '라는 핸디캡을 안고 도전하여 이룬 일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대게 그에 따른 프리미엄을 원한다 '이만큼 살아왔으니 경력을 안정해 달라는 말이다. 사회 곳곳에 그런 장치들은 많다. 65세 이상은 국가 공인 어르신이 되어 지하철 무임승차의 혜택도 누린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사회적 룰에 따라 정해진 절차가 있다면 거쳐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프리미엄은 있다고 본다. 사회가 매끄럽게 유지되는 윤활류 같은 것이지만 거기에 취해 있어서만은 안된다. 소정의 자격과 실력을 갖추어야 프리미엄이 빛나는 법이다.
등장의 과정을 겪으며 마음 고생도 적지 않았다. 글이라는 게 정확한 잣대보다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 특히 문학작품의 특성이다. 알게 모르게 인맥이 형성되기도 한다. 사실 등단이라는 절차도 그런 인맥을 만드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비교적 잘 적응을 해온 것은 같다. 이 나이에 신인상을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신인상이 부끄럽다며 신인상 수상 자리에 나오지 않는 동료를 보았다. 그가 가진 특권의식이 오히려 안쓰러웠다. 등단을 하지 말던지 등단을 했으면 그 세계를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무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못마땅한 일이 있다면 정식으로 헤쳐 나가는 게 옳다. 뒷전에서 부끄러워하는 건 자신을 스스로 모욕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신인상을 받기까지 나도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어느 단체에 속하느냐의 문제도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만 하면 '낭중지추'처럼 어디서나 튀어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했다. 단체마다 크기도 달랐고 신인들의 수준도 차이가 있다. 실력뿐아니라 순서와 기여도가 작용하기도 한다 . 나는 실력을 기르는 가장 기본적인 길을 걸었다. 등단하기 전이라도 공모전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첫 번째 결실이 고동주 문학상이었고 다음이 윤형두 문학상이었다. 등단이 결정되기 전에 입상을 할 수 있었다 . 마침내 10월에 등단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름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였다.
덕분에 올 연말은 온통 축하 분위기였으니 다사다난한 이번 연말이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 다만 중간중간에 겪은 갈등들이 다사다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갈등의 대부분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기 쉽다. 비교, 질투가 압력이 되기도 하고 차별이 되기도 한다. 지나고 보니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배신이라는 마음의 응어리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등단이 더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이제 새해에는 자타 공인 문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글쓰기 연습생이라는 스스로 묶어놓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고자 한다. 그 길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책을 펴내고 북 콘서트도 하고 작품상에 도전해야 하는 멀고 먼 길인 것만 같다.
다행이 문단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었다. 등단 30년이 지난 원로 문인들도 겸허히 문학상 수상을 받아들인다.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일이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오늘의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30년 후면 100살이 넘으니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한 가지, 그때까지 도전할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상을 타고 안 타고는 차치하고 꾸준히 정진할 목표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가끔은 일탈을 꿈꾸고 삐딱할 수도 있겠으니 오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꿈이 있는 한 세상은 살아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