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독서법

by 우선열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한참 독서의 중요성을 알아가던 학창 시절에 유행하던 속독법 때문이기도 하다. '잘 살아 보자'는 화두가 사회를 이끌던 시대, 남보다 앞서야 했다. 무슨 일이건 빨리빨리 해야 앞설 수 있었다. 독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속독법이 유행하고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속독법을 배우기 위해 나섰다. 속독 학원이 문전성시였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속독법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으셨으나 자식들이 책 읽는 걸 좋아하셨다.

첫 딸과 아들 사이에 낀 둘째 딸인 나의 생존 전략은 부모님께 잘 보이기였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골라하는 착한 아이였다. 언니가 읽을 책들을 먼저 읽었다. 시작은 칭찬받기 위해서였지만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언니 책이니 눈치를 보며 빨리 읽어야 했다. 그때 생긴 습관 때문인지 내 독서법은 일단 책을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어머니가 공부는 안 하고 동화책만 읽는다고 걱정하셨지만 책 읽는 재미를 놓을 수가 없었다. 일단 한번 끝까지 빨리 읽어 내용을 안 다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천천히 다시 읽는 방법이 내 독서법이다. 이 독서법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는데 부작용이 생겼다. 노안이 되면서 단숨에 책 한 권을 읽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단 책상 위에 올려놓고 기다린다.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을 시간과 체력이 되어야 읽기 시작한다. 컨디션 조절이 젊은 날 같지 않으니 책상 위에 쌓인 책들이 만만치 않다. 읽을 책이 많다는 사실이 흐뭇하다가 어느 순간 초조해지기도 한다. 빨리 읽어 치워야 할 것만 같다.

새해 벽두에는 느닷없이 문학평론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쌓아놓은 책을 요령 있게 읽고 싶은 얄팍한 계산이다. 편법 같기는 하지만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속내를 들킬까 부끄러웠지만 조심스레 평론 책 추천을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평론 책을 추천해 주셨다. 내 책상에는 평론 책 세 권이 다시 쌓였다. "평론 책이 우선이다"로 순서를 정해 놓았다.

문제는 나의 빨리빨리 독서법이다. 평론을 익히려면 한 문장 한 문장 새겨가며 읽어야 하건만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남들은 책갈피를 꽂아가며 음미하고 익힌 후에야 책장을 넘기는데 나는 다음 장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다. 일단 책장 먼저 넘기고 본다. 잘 이해되지 않거나 좋은 문장이 나오면 책갈피 찾을 틈도 없이 책장 머리를 접거나 볼펜으로 줄을 긋는다. ' 천천히 다시 읽을 거야'라는 핑계를 댄다. 책갈피가 필요 없는 내 독서법이다.

'선우님, 책 다 읽고 빌려주세요"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감해진다. 누가 볼까 부끄러워지는 내 책이다. 나도 조신하고 곱게 책을 다루고 책 대신 메모장을 쓰는 독서를 하고 싶다. 더욱이 요즘 합평 시간에는 자기 작품을 직접 낭독해야 한다. 빨리 읽어 치우는 내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없으니 천천히 읽기 시작하지만 조금 읽다 보며 나도 모르게 쾌속질주하고 만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천천히 읽으세요" 매번 듣는 말이다. 속독법을 배우지도 않았건만 시대 핑계를 대고 만다.

이번 평론 책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 하루 한 챕터씩만 읽고 익히자'다짐을 하고 있건만 . 곳곳에 접어 놓은 부분이나 그어진 줄을 보며 다 읽은 뿌듯함을 누리고 있으니 빨리빨리 내 독서법은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을 듯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한다 " 남들은 돈 내고 속독법도 배우는데 빨리 읽는 것도 능력일 수 있다. 다만 빨리 읽어 치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 습관을 만들면 된다. 곳곳에 접어 놓은 흔적이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처럼 집을 찾아가는 지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빨리 읽는 습관도 사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