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전철은 만원이었다

by 우선열

아침 전철은 만원이었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은 가능하면 타지 말자는 원칙이 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날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겨우 문 앞에 설 수 있었다. 하필 좌석에 앉은 사람의 팔걸이 옆이었다. 팔걸이는 낮았고 그 사람은 팔걸이 위로 팔을 걸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그 사람의 팔을 밀었던 것 같다. 고의는 아니었다. 순간 거칠게 나를 밀치는 힘이 느껴졌다. 마치 밀린 내게 보복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순간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할뻔 하다가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닌데 왜 미안해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 있는 젊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안에서는 복잡한 전철에서 밀리면서도 미안해 한 나와 젊은이의 배려심 없는 행동에 말 한마디 못한 내가 싸우고 있었다.

그럴때 나는 글을 쓴다. 말하지 못한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글에는 녹여 쓸 수가 있다. 특히 수필은 글 쓴 이의 생각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은 숙명일 수도 있겠다.

인생에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는 남을 원망하거나 큰소리를 내는 대신 '나도 잘못한 게 있을 거야' 하고 말았다. 상처를 드러내 치료하기보다는 더 이상 힘들어지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 온 것 같기는 하다. 상처를 부여 안고 힘들어하다가 다른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다. 최선보다 나은 차선도 있다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가끔 가벼운 위로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신을 치유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사춘기 예민한 시절, 아버지의 실수로 입학금이 늦어져 자칫 중학교 입학이 거절당할 수도 있었던 일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서울 취업이 결과를 전하는 이의 작은 실수로 좌절되었을 때도 최종확인을 하지 못한 내 탓이라 여겼다. 잘 버텨 왔다고 생각한 그런 상처들이 사실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글쓰기를 시작한 건 새벽 때문일 수도 있다. 청정한 그 시간이 좋았다. 마치 어머니의 정화수를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한 줄 한 줄 쓰고 있었다. 말 한마디 못하고 견디던 사춘기의 내가 가여워지고 지방에서 보내던 시절도 아름답게 그릴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글을 쓰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의 안타까운 심정도 인정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있기 마련이니 후회에 발목 잡혀 있기보다 나는 글을 쓰며 나를 마주한다. 만원 전철에서 밀리면서도 외려 미안해했던 나도 있고 따끔히 말하지 못했던 나를 후회한 나도 있다. 새벽 청정한 기운을 빌어 나를 정화시킨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