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설국

by 우선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설국, 내 마음의 유키시라시' 라는 기행문에서 그녀는 설국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이 여행 권유를 받았을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 번을 망설이던 아쉬움도 되살아났다. '놓친 떡이 더 커 보인다' 는 말을 실감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녀의 글을 읽어 내려 가며 나는 마치 다시 설국을 다시 읽는 것 같았다. 처음 그 책을 대했을 때 숨을 죽이며 읽어 내려가며 무언지 모를 답답함이 엄습했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던 긴장감도 되살아 났다. 그녀의 글은 그런 면에서 독후감 같기도 했으나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 기행문이었다. 아쉬움이 후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만의 버킷리스트 1위, 가고 싶은 나라는 이렇게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 되었다. 그녀의' 유키시라시'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전에는 '오로라'였다. 특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그림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가고 말거야'. 다짐했지만 내가 간다고 꼭 볼 수 있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를 맞춰 간다 해도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미리 걱정하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되지 않은 일은 걱정해도 소용이 없건만 소심한 필부인 나는 매사 걱정이 앞선다.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은퇴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 볼 여유가 생겼건만 '이제 와서'가 발목을 잡았다.

'밥이 나와 떡이 나와'가 이유였다. 길어진 은퇴 후 생활에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젊은이도 얻기 어려운 일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최선 대신 차선을 선택했다. 풍요한 노후 대신 즐거운 노후, 때로는 최선보다 차선이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풍요한 노후는 나누는 즐거움이지만 즐거운 노후는 내 것이 된다. 글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아직은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평생을 독서와 글쓰기로 보낸 칸트가 한 발자국도 동네를 벗어나 본 적이 없지만 금문교 다리에 낙서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한다. 칸트를 따라 여행하려 한다.

현지에서 보는 오로라는 눈앞의 한 장면이지만 책을 통하면 모든 방향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일층에서 보는 풍광보다 옥상에서 보는 풍광은 훨씬 범위가 넓다. 책에서는 모든 거리가 없어진다. 오늘 내가 읽은 그녀의 기행문은 화인처럼 뇌리에 새겨졌다. 그보다 아름다운 설국을 볼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