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기 이천 원 잘 사면 천 원에도 가능했던 봄동 가격이 오천 원이 넘는다. 가격표를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였다. 산지에 홍수가 났나. 심한 가뭄이었나, 어제 꽃샘추위 때문일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지만 석연치 않다. 제철 봄동이 이리 비싸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서민 살림살이까지 들먹이며 오른 물가에 불평을 털어놓고 있는 중인데"아차!"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두쫀쿠' 다음을 잇는 유행 먹거리가 봄동 비빔밥이라는 소문을 들은 바 있다. 탕후루니 마카롱이니 하는 정체불명의 음식보다야 먹을만하다고 흐뭇해했던 기억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우리의 봄동이 세계를 누빈다는 소식이 자랑스러웠는데 까맣게 잊고 말았다. 유행에 그만큼 둔감한 것이다
'두쫀쿠'는 내가 처음 맛보자마자 이미 유행이 지나갔다는 소식이 들렸고 탕후루는 싱싱한 과일에 설탕을 입힌 것이 못마땅해 일부러 먹지 않았다. 마카롱도 음식이라기보다는 장식품 같아 내가 구입해 먹어 보지는 않았다. 여럿이 어울려서 한두 번 맛본 정도이다.
특별히 미식에 관심이 없으니 유행하는 먹거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특히 음식 맛은 무얼 먹느냐 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결정한다. 산해진미도 불편한 자리에선 먹지 못하고 좋은 사람과는 자장면 한 그릇으로도 행복해진다. 이 봄, 봄동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좋아질 것 같기도 하니 '누구'랑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좋아하는 먹거리 하나에 뒤집히는 얄팍한 여심이다.
묵은지가 실증이 날 무렵 봄동은 봄철 나른한 입맛을 살려내는 신통한 식재료였다. 상큼한 봄동 겉절이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낼 수 있었다. K 한류를 타고 봄동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니 자랑스럽기는 하다.
세계인이 봄동 맛을 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전 세계인들과 봄동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나는 이 봄에 비싼 봄동 가격 때문에 봄동을 즐기는 일은 없어질 수도 있겠다. 어차피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었다. 한 계절 봄동 맛을 보지 못한다 해도 서운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전 세계에 친구를 심어 놓는 일이다.
봄 동을 다루는 일이야 40년 넘는 주부 경력이 보증해 줄 수 있으니 어쩌면 이번 봄에 나는 유행에 민감해진 K푸드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몸값이 높아진 봄동을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