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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sun Cho Aug 23. 2019

[변호사언니들]변호사의 개업준비  

원하는 것과 절대로 피하고 싶은 것을 적절히 배합하여 준비하기

그렇게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당장은 기뻤지만, 힘들게 한 공부인데 오래 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아이가 있는 터라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외출을 하더라도 이모님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집에 돌아가야 하고

아이를 두고 몇주간 여행을 갈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더욱이 내가 집에 있으면 아이가 나와 온전히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이미 30여개월간 이모님과 돈독한 유대를 쌓아온 아이는

이모가 출근하면 "엄마 회사가 회사가~"를 연호하며 울어대기 시작했고

이모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떨어지기 싫어서 울부짖었다.


쌓아온 시간만큼이 애정으로 치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나 역시 오래 쉴 요량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므로 3개월 정도를 시한으로 정하고 

개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른 자영업자와는 달리 변호사는 개업에 있어서는 큰 준비나 자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집에서 누워서도 변호사회에 개업신고만 하면 오늘 당장 개업이 가능하다.


나 역시 개업준비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편은 아니었다.

개업준비를 하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 그리고 정말로 피하고 싶은 것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개업을 하게 되었다.


#1. 입지

-직주근접을 택했고, 서초동을 택하지 않았다


입지가 처음이자 끝인 병원과는 달리, 변호사의 경우는 입지가 큰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른바 간판을 보고 오는 walk-in 손님이 있는 변호사는 손에 꼽을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홍보, 지인의 소개 등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


나의 경우에는 남편이 의정부에서 병원을 개업해서 의정부 개업을 고민해보았지만

경기변호사회로 소속을 옮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고

워킹맘으로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직주근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기도 개업의 카드는 매우 빨리 버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개업 변호사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는 서초동을 개업지로 생각한다.

나 역시 첫 직장은 법원에 인접한 서초동의 사무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초동 특유의 밀집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초년차 시절에도 내내 법정에서 다툰 변호사를 점심시간 옆 테이블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초동은 개업지 리스트에서 제외시키게 되었다.


#2. 개업의 형태

-공유오피스나 신규 설립보다는 법인 안에서의 소속감과 업무편의성을 택했다


변호사가 개업을 하는 경우 

1) 법인을 신규로 설립하거나

2)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방법

3) 이미 설립된 법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1) 법인 신규로 설립하기


한 법인 안에서 파트너까지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던 예전과는 달리

30대 변호사들은 8-9년차가 되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법인을 새로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도 이 정도 연차의 시니어-어쏘 정도 되는 변호사들이 5-6명 모여서 만든 법인들이 꽤 있다.

이와 같은 개업 형태는 입지 선정부터 법인설립, 가구 및 집기 구입, 직원 채용까지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같은 경우에는 이 정도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가 주저되어 법인 신규설립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2)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방법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방법도 선택지 중의 하나였다.

스타트업만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변호사들을 위한 공유오피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개업형태가 궁금해서 공유오피스의 초기 모델인 패스트 파이브, 최근에 생긴 빌딩블럭스도 견학을 가보았지만

복합기를 공유하는 점, 

전화통화가 다른 사업자에게 들릴 수 있는 점, 

공유오피스마다 회의실 이용시간에 제한이 있는 점 등이 마음에 걸렸다. 

입주비 외에 직원을 별도로 채용해야 하는 면에서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까지 입주를 고민했던 패스트파이브, 간단한 회의를 할 수 있는 부스가 귀여웠다
인테리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빌딩블럭스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업장만 공유오피스로 내놓고 오픈된 형태의 데스크만 사용하는 '핫데스크'만 쓰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는 예치금을 제외하고는 1달 이용료가 30만원 정도로 무척 저렴하다.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것은 개업변호사의 장점


단적으로 이렇게 인터넷 연결 되는 노트북만 있어도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핫데스크만 빌려도 가끔 회의실 사용만 한다면

초미세 형태의 개업도 가능하다고 본다.


3) 기존 법무법인에 별산으로 참여 


공유오피스 안에서의 나홀로 독립, 그리고 기존 법무법인 별산 참여를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가장 무난한 방식인 기존에 설립된 법인에 별산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선택을 했다.


'별산'은 법인의 변호사로 소속되지만 누구에게 채용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사건을 수임해서 법인에 일정 비용을 납부한 나머지의 수익을 내가 모두 가져가게 되는 구조이다. 

쉽게 말하면 개인변호사들의 개인사업장으로서의 가게들이 하나의 법인에 물리적으로 모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변호사사무소인 '김.장 법률사무'소 역시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법인 별산의 장점은 기존의 직원들과 집기 등의 인프라를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서초동도 다 제외했고, 개업 형태는 법인 별산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집과 가까운 지역의 법인에 빈 자리가 있는지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라 상당히 수월했다.


#3. 법인 선택

-기존의 구성원들과의 조화가능성을 고민했다


인스타그램 레이아웃 프로그램을 쓴 스시 오마카세 리뷰처럼, 3x3로 딱 떨어지는 9명의 변호사들

수백, 수천개의 법인 중에서 내가 법인을 고른 기준은

1) 10명 내외의 젊은 변호사들이 모인 법인일 것

2) 생각이 고루하지 않은 회사일 것

3) 진취적인 아이템을 가진 변호사들이 모인 회사일 것

이었다. 


1) 10명 내외의 젊은 변호사들이 모인 법인


중견 법인 중에서도 별산 개업 변호사들이 수십명이 있는 법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구성원들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지나치게 동떨어져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았고

고년차의 전관(이른바 법원이나 검찰에서 근무하다 변호사로 개업하신 분들) 출신 변호사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내가 개업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소속변호사처럼 어른들을 모셔야 할 것이 눈에 뻔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약 10명 정도의 변호사가 모인 법인이 서로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협업하기에 좋을 것 같은 적절한 규모로 생각되었다.


2) 생각이 고루하지 않은 회사일 것 


30대 후반-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의 나이의 변호사들 중에서 이미 생각의 틀이 고정되어 있고

지나치게 형식을 중시하는 변호사들도 있었다.

이런 구성원들이 있는 법인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가능하면 한 법인에서 오래 무탈하게 지내고 싶어서

지나치게 정치색이 뚜렷한 법인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3) 진취적인 아이템을 가진 변호사들이 모인 회사일 것

 

그리고 아무 특색 없이 일반 민사소송이나 개인간의 분쟁만 진행하는 변호사들이 모인 법인도 있었다.

나같은 경우에는 조금 특수한 분야에서만 8년간 몸을 담았기 때문에

나처럼 자기만의 비장의 무기를 가진 변호사들 사이에서 서로 교류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건만 가지고 있는 변호사들이 모인 법인도 제외했다.


IT, 블록체인, 아니면 부동산과 같은 자신의 특수분야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변호사들이 있는 법인을 골랐다.


그리고 단순한 송무업무만 할 수 있는 법인보다는 

함께 연구용역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력과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이 있는 법인을 물색했다.


카톡으로 순식간에 합류 결정

그렇게 법대 동기가 새로 설립한 법무법인에 합류하게 되었다. 


지금 속해있는 법인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서 사건의 진행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식의 협업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고

나이대가 비슷하다보니 친목도모도 잘 되는 편이다. 

각각 개인사업자이긴 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편.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저녁회식도 한다

#4. 비용

-지나치게 저렴한 법인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가격이 높아도 직원들이 좋은 법인도 있었다


'별산'은 결국 내가 수임해서 번 돈에서 법인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가 법인을 결정하는 중요요소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법인별산의 비용도 매우 다양해졌다.


보통 별산 변호사의 비용이라 함은

1. 방값(공간 및 집기 이용료)
2. 직원 이용(소송문서 수발 및 각종 회계업무)

3. 개인세금

4. 법인세 갹출 

정도가 된다.


요즘에는 아예 초창기 몇 달간의 비용을 받지 않는 법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선택한 법인의 경우는 비용면에서는 아주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법인이다.

모든 비용들을 합산하면 매달 1건 이상의 소송을 수임해야 법인비용에 충당할 수 있는 정도.

라고 보면 된다.

내가 집에 돈을 가져가려면 매달 2건 이상은 수임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법인 중에서는 직원들의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시설이 매우 열악한 경우도 있다.


내가 고른 법인은 가격은 높았지만 업무를 보조해주시는 직원들의 업무수행능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신생 법인이라 인테리어가 매우 깔끔했다.

고루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아닌 유리위주의 흑백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인에서 개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5. 에필로그


사람들이 어떻게 개업했어? 라고 하면 하하하 대충 집 가까운 데로 골랐어요, 라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몇 개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 안에서 선택지를 넓히지 않고 빠르게 맘에 안드는 법인들을 소거했던 것이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법인과 비교해가면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되었던 광화문의 모 법인은

내가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변호사를 채용하는 공고를 냈고 

대표변호사가 면접을 보러 온 피면접자들에게 인격모독적인 언사를 퍼부어 모두의 기피펌(이른바 '블랙')으로 소문나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곳에서 개업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시 그 법인의 대표변호사는 내가 장점으로 가지고 있는 분야를 키워주겠다고 했고, 

조건도 내가 제시하라고 했지만

반대로 자기 스스로는 어떠한 만족스러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다. 

만약 그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대표변호사가 쉽게쉽게 따오는 일을 같이 하면서 수임은 많이 했겠지만

이만큼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느낌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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