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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미영 변호사 Sep 12. 2019

[변호사 언니들] 미대 오빠와 결혼한 법대 언니

나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고시 공부를 했고 다행히 졸업 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나는 꽃다운 28세에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했다.


태평양은 내가 변호사 시보를 하던 로펌이었다. 시보 생활 때 만난 선배들은 멀끔한 정장에 똑똑함이 묻어나는 눈빛을 장착하고 있었고, 술자리에서도 어찌나들 재밌게 노시던지...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 그다지 크게 고민을 하지 않던 나는, 내가 일할 회사를 고를 때에도 크게 고민을 하지는 않았었다.


능력, 언변, 인품 뭐하나 빠지지 않던 선배께서 “너도 들어와” 한 마디 하시자 큰 고민 없이 “네” 하고 결정되었다.


결국 난 시보 때 만난 소위 “리쿠르팅 담당 변호사”들의 반짝임을 보고 입사를 했던 것인데......


 나는 그들의 머리가 왜 항상 떡져 있는지, 지나가며 살짝 본 선배의 방에 왜 리클라이너가 있는 것인지, 왜 술자리에 참석했던 재미난 선배들이 모임이 파한 그 늦은 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는 것인지.... 그 이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 첫 직장


입사 이후 맞닥뜨린 로펌에서의 하루하루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로펌이 똑똑이들의 집합소인 건 맞았지만, 그 똑똑이들이 허덕일 정도로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았다. 처음에야 나도 정장을 차려 입고 곱게 화장도 하고 다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 재킷은 방 안에 걸어둔 채 대충 편한 차림으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화장......휴....  화장은 출근 후에 마음이 내키면 했다. 방안에 리클라이너를 마련해서 점심 대신 잠을 청하는 날이 늘어났다.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신나게 들이켠 이후에도 (너무도 당연한 일인 양) 다 같이 손잡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도 안 하던 밤새기와 별 보기 운동의 나날이었다.

폭발하는 스트레스를 가라앉히기 좋은 달항아리

그럼에도! 몸이 좀 힘들었을지언정,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일 자체가 재미있었다기보다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양 내 옆 방 동료도, 옆옆방 선배도, 옆옆옆방 후배도 다 같이 그 생활을 해서인지 그 삶이 고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와중에 나만 저리 굴러댔다면 그 억울함을 견딜 수 없었겠지만! 이건 뭐 다 같이 아사리판이니...


내가 변호사로서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얼마나 대단한 사건들을 처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쁘지 않은 사회초년생 생활이었던 것 같다.


미대 오빠를 만나다


바쁘게 살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소소한 연애와 소소하지 않은 소비생활로 스트레스를 떨어내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내 나이는 어느덧 32살이 되어 있었다. 이제 5년 차 변호사.


이맘쯤 누구나 한다는 그 생각,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이러고 살고 있냐.

이러면 내가 갑자기 이 회사의 에이스가 되길 하나, 대재벌이 되길 하나...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집에서 방을 좀 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잔소리였지만, 지친 내 인생에 변곡점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동료 변호사가 나에게 친구를 소개해주겠단다. 그런데 그 오빠가 미대를 나왔단다.


법대 오빠, 의대 오빠, 경영대 오빠, 공대 오빠 다 만나봤지만... 미대 오빠라니...

미대 오빠면 분위기 있고, 감성적이고, 센서티브하고 그런가? 나는 세상 무뚝뚝하고 시간이 나면 그냥 잠이나 자고 싶은 그런 여자인데... 아 모르겠다 일단 만나나 보자.


긴 머리를 휘날린다거나 감각적인 아이템을 장착하고 나타날 줄 알았던 그는... 그냥 평범한 법대 오빠 같았다(오히려 나의 후배 변호사들이 긴 머리를 휘날리고 초감각적인 아이템들을 자랑하더란).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일을 한다던 그와 그날 나누었던 대화는 사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소개팅 자리에서 늘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나중에 나눈 이야기지만 그는 나와 헤어진 후 내가 어떻게 생겼나 잘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내가 시종일관 날리던 웃음과 리액션이 참 좋았다고... 사실 그건 내가 터프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비지니스 스마일과 리액션이었는데!


여튼 그날의 자리는 서로에게 인상 깊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았던 소개팅이었다.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던 미대 오빠가 차 안에서 애프터 신청을 했던 걸 보면......


그런데 이 미대 오빠는 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대신,


내가 뮤지엄 산이라는 미술관을 정말 좋아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올타임 최애 미술관

미술관 다니는 걸 싫어하진 않았지만 딱히 찾아다니지도 않았는데, 이 미대 오빠는 미술관을 찾아 다니는 스타일이었다.


법대 언니인 나에게 법은 그렇게 재밌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존재였지만, 미대 오빠인 내 남편은 미술을 정말 좋아했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아니겠는가?


미대 오빠는 내 남편이 되었고, 전공을 살려 코끼리와 치치포포를 매일 그려내는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우린 여전히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필수 코스로 넣는 삶을 살고 있고, 법대 언니는 사무실에 달항아리를 걸고 폭발하는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있다.


미대 오빠가 사랑하는 그 미술이 궁금했던 법대 언니는 오늘도 다음에는 어떤 전시를 보러 갈지, 다음에는 어떤 미술관에 가볼지, 다음엔 어떤 그림을 살지 열심히 고민만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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