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새로운 챕터가 열리거든
자동차와 나의 관계는 인연이었을까 악연이었을까. 시작은 나빴다. 같은 팀에서 일하던 선배가 급하게 퇴사하면서 자동차 담당의 역할이 나한테 넘어왔다. 그때 피처팀에 면허가 있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 자동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자동차 담당 기자가 되었다. 배워야 했는데 선배가 없었다. 방법이 없었지만 해내야 했다. 에디터는 어쨌든 프로페셔널이어야 하니까.
쉬울 리 없었다. 퇴근길 교차로에 서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들을 보기도 싫었다. 진짜 스트레스는 자동차를 다루는 데서 오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를 다뤄야 하는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일을 못하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쓰고 싶었던 소설과 에세이. 공부하고 싶었던 음악과 미술로부터 멀어졌다. 끝내 요원해졌다.
하지만 익숙해졌다. 원래의 커리어를 '자동차 담당기자'의 커리어가 역전하기 시작했다. 1년에 8번씩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때마다 진귀한 경험을 했다. 인정도 받았고 재미도 있었다. 독자들도 생겼다. 자동차도 끝없이 새로워지는 세계였다.
그렇게 단독자로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분야에 대한 미련을 그대로 가진 채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되었다. 늘 중심에서 활동하는 기자였지만 정체성만은 변방이었던 이유였다. 그 미련이 나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디서나 조금은 이방인 같았으니까.
그래서였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 단 한 순간도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 일이니까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가 있어서 즐겼고, 잘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념하지 못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전념할 수 없다. 잘 해내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게 욕구불만인 상태가 다시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 자동차 좋아하나봐. 어? 자동차 정말 좋아하게 됐나봐. 자동차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됐나봐. 응? 정말 이상하네 나 자동차 좋아해 신난다. 오 이 깨끗한 마음 뭐지? 자동차가 좋아졌어. 좋아하니까 기분 좋다. 오 진짜 묘하다. 아주 맑아졌다. 갑자기.'
오늘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였다. 신호대기 하던 교차로에서 다른 자동차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런 문장들이 머리 속을 흐르기 시작했다. 빠르고 단호하게 흐르면서 매캐하게 끈적이던 것들을 싹 닦아냈다. 몇 년동안 묵어있던 것들이 빠르게 맑아지면서 내 마음들이 똑바로 보였다. 실은 싫어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는데, 직시하지 못해서 인정할 수 없었던 좋은 마음들이 저 안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자동차 참 좋아하는 구나. 갑자기 그게 보였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맑아지던 마음을 꼭 적어두고 싶었다. 새로운 챕터는 이런 순간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짜 전념은 이런 깨끗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적어두면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매캐해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기억해두면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