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과 반성.
10월 31일이다. 단풍은 물들고 또 낙엽이 되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이번 달에는 황망한 일이 많았다. 노동자 한 명이 빵을 만들다 기계에 끼여 사망했고, 축제를 즐기러 나온 약 150여명의 사람들이 사람들에 끼여 사망했다. 사고의 책임자들이 내놓은 입장문은 하나같이 비열했다. 제대로 사과를 할 줄 몰랐고 제대로 책임을 질 줄 몰랐다.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말만 해댔다. 참사는 반복되고 슬픔은 계속된다. 세상은 멈추어져 있다.
10월 독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로마법 수업>은 성과가 없었고 <사기 열전> 1권은 매듭을 짓지 못했다. <사피엔스>는 서문을 읽고 나서 덮어두었고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한 권만 제대로 읽었다. 한 해는 저물어가고 마음은 쫓기는데 황망한 일은 끊이지 않았다. 파타고니아 기업을 다룬 책도 어지러운 세상을 잊을 목적으로 읽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평정심을 지키고 유지하는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제19대 대통령의 글을 10월에 읽었다. 2017년에 사서 읽은 <대한민국이 묻는다>와 사놓고 읽지 않았던 <운명에서 희망으로>를 꼼꼼하게 읽고 정리를 했다.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다룬 모 기자들의 책 <청와대 마지막 대통령 5년의 외교 비하인드>는 읽고 나서 별다른 메모를 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역사 공부하는 법>도 이번 달 독서 계획에는 없던 책이었으나, 딸아이의 성장이 여러모로 확인되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봤다.
11월에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등 4권을 읽으려 한다. 각기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책이지만 내가 요즘 부쩍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책들로, 나와 우리 식구의 2022년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도서이다. 특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에 애정이 가는데, 짧은 문장을 모아놓은 글이라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2022년을 하나씩 정리할 시간이다. 올해 했던 일들과 올해 읽었던 책들, 올해 썼던 기록을 쭉 훑고 2023년을 준비할 시간이다. 회한을 하려면 짧은 시간이지만 반성을 하려면 충분한 시간이다. 2022년 초부터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단어들은 이제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고, 노동, 변론, 민주주의 등 3가지 언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황망한 일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