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쟁, 가족, 행복.
짧은 여행이었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50시간이다. 50시간 중에 자는 것도 포함되니 괌에서 눈 뜨고 있었던 시간은 40시간 남짓일 거다. 그럼에도 몇 가지 있었다. 괌을 공부하며 궁금했던 거, 괌 현지에서 불쑥 생각났던 거, 괌에서 돌아와 찾아본 것들이 얼마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도 더 되었고 앞으로 괌을 다시 갈 기회가 생길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생각들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열어보거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면 추억에 잠기거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듯이.
괌 여행을 처음 준비했던 2020년 1월로 돌아가본다. 지금은 옛말이 되었지만 세계는 코로나로 꽁꽁 닫혔었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단단한 장벽이 있었다. 2023년 5월 5일에 국제보건기구(WHO)가 코로나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부터 해제한다고 발표할 때까지 세계는 3년 3개월 동안 만나지 못하고 연결되지 못했다. 관광업이 국내총생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괌은 그야말로 직격타를 맞았다. 입국하는 관광객이 줄어드니 국가 산업은 연쇄적으로 마비됐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여행 둘째 날 돌고래 투어를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아, 관광객들을 맞이하려고 준비해둔 이 수많은 보트와 시설을 어떻게 했었을까? 인구가 부족해 내수만으로는 경제가 유지되기 어려웠을텐데 어떤 자구책을 마련했었을까?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한 분야에서만 수입을 올리는 게 장기적으로 바람직할까?' 펜데믹 기간 줄어든 관광객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괌 주민들 일부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던 거 같다. 이런 이야기를 동서와 주고받으며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어디에 의존하면 안 되겠다.'
괌 현지 기반 시설을 보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도로 위에는 이정표가 거의 없었고 도로 포장 상태도 고르지 못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에 무엇이 나온다 정도의 표지판은 있어야 할 것인데 그마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글쎄, 현지 주민들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나? GPS가 달린 차량을 운전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전기 통신이 모두 끊어지게 되면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자주 보고 자주 가는 곳이라면 이정표가 없는 게 오히려 미관상으로 깔끔하고 자연친화적인 결과일까? 잘 모르겠다.
괌은 푸에르토리코처럼 미국의 통제를 받는 자치령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하나의 주(State)가 아닌 '준주'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기반 시설이 깨끗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고풍스럽다기보다는 관리가 덜 되어 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수 있겠다. 중앙의 지원이 부족한, 중앙의 영향이 덜 미치는, 그렇다고 완전한 자치권도 부여되지 않은 관광지였다는 게 짧은 시간 내가 느낀 괌의 첫 이미지였다. 도시와 국가 역시 디자인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괌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의 주요 격전지이기도 하다. 일본에 의해 강제징집 당한 조선인들이 괌, 사이판, 티니안 등 서태평양 주요 섬에 군데군데 배치되어 강제로 노역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괌은 점차 미국의 군사기지로 변해갔고 지금도 미 정부의 정책에 따라 괌 곳곳에 군사기지가 증설되고 있다. 내가 묵었던 두짓 비치 리조트에도 군복을 입은 미군을 여럿 봤다. 과연 미국에게 군대란 어떤 의미일까? 세계 곳곳에 건설된 미군기지는 그 나라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괌에 주둔한 미군들이 이란으로도 파병 될까?
괌 현지에서 한국 사람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대한민국 관광객은 괌을 방문하는 주요 손님 중 하나이다. 전쟁 이후 현지에 정착한 사람도 많고 현지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상가, 쇼핑센터 곳곳에 한국어 간판이 걸려 있고 한국에 본사를 둔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케이팝 K-Pop, 케이드라마K - Drama를 필두로 한 '한류'가 세계적으로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이 곳 괌에서는 또 어떨까? 여유가 있어 괌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짧은 여행이었다.
괌 여행에서 다녀온 지 어느새 두 달. 나는 이 짧은 여행에서 가족과 행복을 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을 준비하고 도착해서 함께한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캐리어에 짐을 챙기고 공항에서 줄을 서고 늦은 시간까지 뜬눈으로 입국을 기다리고 마트에서 산 간식으로 첫 끼니를 해결하고 해변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수영장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기대하고 찾아갔던 식당에서 기가 막힌 음식을 먹고 별 거 아닌 길거리 음식에 감탄을 내뱉던 모든 시간이 애틋하고 소중했다. 그래서 이 짧은 여행이 짧지가 않았다. 밀도가 아주 높은, 농도가 아주 짙은 여행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가족 구성원 모두 다른 걸 겪고 있으니 대화 내용도 달라진다.
괌 여행을 처음 준비하던 2020년에는 지금에 비해 휴가를 쓰는 게 비교적 자유로웠다. 두 번째 여행을 준비하던 2023년에도 그랬다. 지금은 소규모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원하는 시간에 제대로 쉬는 게 자유롭지가 못하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여건이 상대적으로 마련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요즘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단어는 '자립'이다. 회사에 소속이 되더라도 내 시간을 내가 장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하고, 소속이 안 되더라도 내 밥벌이를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한다.
괌 날씨는 참 포근했다. 시리던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앉거나 설 때 느껴지던 통증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 바닷물은 너무나 맑고 따뜻했으며 모래는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괌에서 오래 살면 또 모를 수도 있다. 여행이 아닌 거주의 목적이라면 또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 40년 이상 살던 사람이라 한국식 제도와 환경에 익숙해져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오랜 시간 젖어있다. 경쟁이 경쟁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이번 여행은 참 풍성했다. 더 알고 싶고 더 만나고 싶은 곳이었다. 연이 닿으면 꼭 다시 가고 싶다.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