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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있다면 할슈타트

엄마의가출일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냐 묻는다면, 오스트리아의 고사우와 할슈타트이다. 반전이다. 프라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오스트리아라니! 이 핑계를 빌어, 오스트리아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 


10시간을 들여 멀리 떠나 왔는데, 6일의 여정을 모두 프라하 에만 있기에는 아쉬웠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하루일정으로 프라하 근교 작은 마을 체스키크롬로프와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를 다녀오는 투어를 신청했다. 가격이 꽤 비싸긴 했지만 안전하고 편리하게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벤을 타고 다녀오는 투어프로그램이라 만족스러웠다. 벤에는 나와 혼자 온 20대 여성 1명, 그리고 신혼부부 두팀으로 총 6명이 동행했다. 첫만남은 간단한 인사말만 주고받은 채 매우 어색했다. 체스키크롬로프로 가는 중간에 휴게소를 들렀는데,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색함이 조금 풀어졌다. 그 중 포항에서 온 신혼 부부가 있었는데 두 사람의 재미난 입담 덕에 화기애애해졌다. 


3주 정도 신혼여행을 계획하고 여행한지 2주 째인데, 긴 시간을 보낸만큼 에피소드도 만만치 않았다. 또 귀여운 사투리로 듣고 있자니 고향친구를 만난 것 같고 나의 신혼시절이 생각나서 훈훈했다. 


프라하 시내의 느낌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고요했던 체스키크롬로프. 쁘띠쁘띠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곳이었다. 기분 좋아지는 꽃들과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누가 엄마 아니랄까봐 체스키크롬로프와 그 곳의 성을 거닐고 있자니 소피아 공주의 인첸시아 왕국이 떠올랐다. 


귀엽지만 용감한 소피아 공주님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왕국 같았다. 그런데 떠나기 전, ‘체스키크롬로프가 더 좋았어요.’라고 말했던 지인들의 말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일까, 좋긴 좋았지만 내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3시간 남짓 더 달려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에 들어왔다. 사실 국경을 차로 넘어본 적은 처음이다. 여권 검사도, 별다른 변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선을 넘었다. 와이파이만 껐다 켰을뿐, 다른 변화는 없었다. 주변 풍경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넓디 넓은 초원, 목수가 살고 있을것만 같은 나무로 만든 평온한 집들. 프라하를 떠난지 5시간 만에,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이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와........’ 진심으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대자연을 처음본다. 눈앞에는 녹지않은 눈 산이 떡하니 솟아있었다. 내가 본 가장 큰 산은 한라산일텐데, 이름모를 그 산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원래의 목적지인 할슈타트를 가기 전에 고사우에 들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폭설의 흔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눈이 다 녹아 갈 수 있다했다. 


고사우 호수


차에서 내려 고사우 호수로 걸어들어갔다. 모자를 멀리 날려버릴 만큼의 강한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 머리카락은 갈 곳을 잃고 마구마구 흔들리다 못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쨍쨍한 하늘과 색이 똑같은 호수. 그리고 주변을 빙 둘러싼 눈 쌓인 산은 나에게 ‘이국적’이라는 표현의 또 다른 이미지를 선사했다. 나에게 이국적이라는 표현은, 홍콩의 빡빡한 도시의 모습, 중국의 화려하고 거대한 사찰, 베트남의 오행산이나 호이안의 풍경 정도였다. 그런데, 자연이 이국적일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고어스의 모습은 신선했다. 그리고 가슴이 탁 트였다. 소리 지르지 않았지만, 소리 지른듯한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나의 남편, 오빠가 떠올랐다. 오빠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정말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의 어느 장소 보다 이 곳을 왠지 더 좋아했을 것 같다는 마음에 남편에게 페이스타임을 걸었다. 명랑발랄한 딸의 얼굴과 함께 남편이 등장 했다. 셀카봉을 들고 한바퀴 휘익 돌며 이곳의 풍경을 전했다. 그는 워낙 리액션이 없는 사람이라, “우와-멋지네”가 다였다. 그런데 리액션 대왕인 우리딸은 달랐다. 아직도 딸의 말이 생 생하게 떠오른다. “와~ 엄마. 너무 멋지네요. 나도 거기 가고 싶은데.”. “우리 딸도 좋아할만한 곳이구나. 그래 엄마랑 이 다음에 꼬옥 같이오자.” 딸과 약속했다. 나는 언젠가, 딸의 손을 잡고 이곳, 고어스에 올 것이다. 약속은 지켜야지. 


고어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20-30분 남짓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할슈타트다. 유명한 관광지인만큼 마을 초입부터 대형버스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멀리 등산복을 입고 온 한국인 패키지 부대도 보였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투어 동행인들을 내려주었고 자유시간을 3시간 정도 부여 받았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배가 너무 고팠다. 어색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점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고, 딱히 알아본 곳도 없던 나는 같이 먹자고 말했다. 그렇게 할슈타트 투어 동행 6인은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할슈타트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이었다. 야외에 빙 둘러앉아 경치 한모금, 맥주 한 모금하며 이야기 꽃을 도란도란 피워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참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침묵이 시작되려 할 때는 질문을 툭 던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경치에 대한 칭찬을 끝내고 어색해지려 할 때 신혼부부 한 커플에게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시트콤처럼 시작되었고,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덕분에 식사는 어색하지 않게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입가에 묻은 흔적들을 닦고 있는데, 접시에 한입씩 남은 음식에 동시에 빵 터져 웃어댔다.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접시마다 한입씩 남겨둔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인의 미덕이라며, 이 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한컷씩 찍어댔다. 음식의 맛보다는 그때 함께 웃었던 그 순간이 강하게 기억난다. 


보통은 예쁘게 플레이팅된 사진을 찍지만. 한 입씩 눈치껏 남겨둔 이 모습이 너무 웃겨 카메라에 담았다. 



음식을 다 먹은 후부터는 자유롭게 할슈타트를 걸었다. 고요함에 나의 걸음마저 느려졌다. 눈으로 봤다가 예뻐서 사진으로 담아내면, 사진 속 할슈타트는 내 눈에 담은 그것보다 못했다. 이 아름다움을 남편과 딸에게 전해주는 방법은 딱 하나다. 함께 오는 것. 그리고 더불어 이 곳을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이 생각났다. 송인님이었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곳의 분위기는 송인님을 불러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페이스톡을 연결했다. 한국 시각으로는 밤 11시 즈음, 퇴근은 했지만 다음날 있을 ‘월간피플’을 준비하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셀카봉으로 역시나 한바퀴 휘익 돌며 그녀에게 이곳의 풍경을 전했다.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이 곳을 참 좋아했다. 심지어 이곳에 온적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로 기억한다는 그녀. 그녀에게 이 곳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 때면 이 장면이 그리워진다.



언젠가부터 어떤 장소나 책,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누군가가 좋아할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취향은 잘 모르지만, 남의 취향을 잘 아는 나는 뭘까?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눈치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게 참 싫을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참 좋다. 누군가를 조금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리고 상대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어서. 


할슈타트를 떠나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머릿 속엔 할슈타트의 청량한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강렬했다. 일상으로 복귀해 찌든 나를 발견할 때면, 나는 할슈타트와 그곳에서 마셨던 맥주가 아주 많이 생각날 것 같다.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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