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여기는 한국이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구매한 물품은 실내화였다. 미드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집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다. 신발장과 방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흙 묻은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집에 들어와 소파나 침대에 누워버리는 가족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지만, 신발을 신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샤워 후에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채 같은 공간을 맨발로 걸어 다닌다.
'이럴 거면 발을 왜 닦는 거야?'
흙 밟은 신발을 신고 집을 돌아다니며,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것은 아마 평생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씻는 것도 생각하면서 씻어야 한다. 화장실에 배수구가 없어서 욕조 안에서 밖으로 물이 튀지 않게 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샤워를 하고 나면 화장실 전체가 습기로 가득하고, 바닥은 물기로 가득하다. 첫날 아무 생각 없이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물바다가 된 바닥을 보고 당황했다. 내 몸 보다 큰 타월로 몸을 닦은 후 물바다가 된 바닥을 닦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기 때문에 바깥으로 물이 튀지 않게 욕조 안에서만 씻어야 하는 걸 몰랐다.
다음날 샤워할 때 물이 튀지 않도록 살살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캘리포니아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도시다. 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매일 샤워를 하지 않고, 샤워를 하더라도 물을 적게 사용하기 위해 5분 내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만 욕조에 물을 받아 씻을 수 있다. 매일 샤워하고, 또 그 샤워를 오래 하는 것은 굉장히 민폐였던 상황이었다. 물이 튀지 않고 빠르게 샤워하는 방법은 금방 터득했지만, 매일 샤워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매일 하던 샤워를 주 6일만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샤워 후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시간이었다. 호스트 파파와 함께 앉아 뉴스를 보는 것만큼 좋은 리스닝 연습은 없었다. 알아듣는 것보다 못 알아듣는 내용이 더 많았지만, 흘러나오는 앵커 멘트와 어둑해진 조명의 조화가 운치 있게 느껴졌다. 호스트 맘이 준비해 준 한국에 비해 짜고 달았던 자극적인 음식들을 TV 앞에 두고 배때지가 불러올 만큼 먹고 널브러진 유일한 시간. 처음에는 자극적인 맛에 손도 안 댔던 음식들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에는 깨끗하게 다 비워버린 음식들이다.
미국인들의 몸이 큰 이유가 있다. 양푼에 나와버리는 샐러드와 얼굴보다 큰 피자 한 조각 등 어떤 음식이든 다 빅사이즈였던 음식에 놀라 반도 못 먹고 버리기 일쑤였던 날들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위가 늘어나준 덕분에(?) 준비된 음식을 다 먹고도 디저트까지 찾아먹었던 날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포동포동해진 몸으로 한국에 도착했고, 엄마는 '너 살쪘네?'한마디로 나의 귀국을 환영했다.
미국 사람들 아니 적어도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친절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문'이었다. 겨우 몇 달을 있었을 뿐인데, 20여 년을 있었던 한국에서 뒷사람을 위해 잡아주지 않는 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맞다 여기는 한국이지."
멋쩍게 웃으며 적응해 나가는 한국 생활이다.
10년 전 경험한 교환학생을 떠올리는 시간은 꽤 행복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된 시간이었고, 여유가 없던 내가 조금이나마 여유라는 것을 가져본 시간들이었다.
요즘 들려오는 소식은 미국의 대선 소식이다. TV를 보던 화면이 미국 현지 상황으로 넘어갈 때면 이따금씩 호스트 파파와 함께 앉아 뉴스를 보던 그때를 상상한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마을 치코에서는 자극적인 간식들을 앞에 두고 뉴스를 보고 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가 잘 내리지 않을까? 여전히 샐러드는 양푼에 가득 담아 먹고, 얼굴보다 큰 피자조각을 두 세 조각씩 먹으면서 웃고 있겠지? 나의 기억 속에는 그들이 선명한데, 그들의 기억 속에는 내가 있을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미국 생활이 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