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끄적임 16 '복사 붙여 넣기 된 감정'

by 우여나


자꾸 나도 모르게 지나간 불안을 꺼내와

지금의 상황에 복사 붙여 넣기 하는 순간들이 있다.
비슷하다는 아주 작은 조각 하나를

마치 ‘같다’고 받아들여

결국, 모든 걸 같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때 그랬으니까...’


사실은, 정말 같아서 같게 보는 게 아니다.

같게 보려는...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같게 보게 되는 내 마음이 있을 뿐이다.


‘기억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때문’


‘몸은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 느낀 감정은 냄새처럼

몸에 배어 상황보다 훨씬 오래, 우리 안에 남게 된다.

때로는 내장 깊숙이 파고들어

자신의 존재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때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킨다.


‘너무 힘들었기에 잊히지 못한 감정
또 힘들면 안 되니깐 잊지 말아야 할 감정’


야속히도 그리고 감사히도

시간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흐르기에

우리는 또 그렇게 다음날을 맞이한다.


다음날 그리고 또또 다음날.

그러다 예상치 못한 다음날

별거 아닌 말에, 별거 아닌 표정에

감정의 쓰나미가 일어난다.


마음이 유난히 흔들리고 이유 없이 움츠러들 때

바로 때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 마음이 움직인 순간이다

마음 입장에선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인 거다.


마음에겐 타당 나에겐 당황스러움


하지만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스스로를 예민하다며 마음을 탓하고,

나무르기 시작한다.

마음이 기대했던 나의 반응은 아니었을 거다.

위로와 고마움을 기대했을 마음은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알아달라

내 온몸에 작은 진동을 동시에 일으킨다.


내가 예민해서라기보단 더 예민해지기 싫은 마음

별거 아닌 일인데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별거 아닌 일인데 내 마음이 요동쳤다면

그건 진짜 이유 있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충실하다.

동시에 여리고 관심종자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챙김 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버거운 감정을 놓지 않는 거다.


그래서 그냥 넘기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따라 그 기억으로 가라는 말이 아니다.
가르칠 걸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너의 시작은 그때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생긴 마음을 현재로 데려와서

새로운 순간을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해서

안심시켜 주는 것 ‘
지금의 내가 복사 붙여 넣기 된 감정에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무참히 흔들리 때 속으로 되뇌어 본다.

과거의 기억 속에 남겨진 마음을
무심코 지금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 그렇게 아팠으니까, 이번에도 아플 거야.


아니,
그땐 정말 아팠지만, 지금은 달라.


과거에 붙잡힌 마음으로

그대로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데려와서
조금씩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억은 품되,

기억으로부터의 감정을

지금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로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답이 아니어도

그저 자유롭게 적어 볼 용기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이

그냥 흩어지지 않도록

[오늘의 끄적임]을 시작해 보려구요

^_____^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