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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30. 2024

마침내 졸업

2년이 지났고 그렇게 나는 척척 석사가 되었다.  

드디어 인생의 숙원사업이었던 MBA를 졸업했다! 졸업식 한지 1달이 지난 뒤에야 그 여운을 온전히 즐기고 회고를 해본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고대하던 석사가 되었더니 뭐가 달라졌냐고? 달라진 건 전. 혀. 없. 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연봉이 오르지도 않았고 이직을 하지도 않았다(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커리어 외적으로도 결과론적으로 이게 변했어! 할 건 없다. 아직도 인생에 바람이 불면 비틀거리고 고난과 역경이 닥치면 눈물이 나기도 하며, 가끔 무너지기도 하는 그저 그런 나약한 인간이다. 서랍장에 학위 증서를 하나 추가 하긴 했고 인사시스템에 석사로 업데이트 하긴 했다.


그럼 그 아무것도 변화도 없는걸 그 돈과 시간을 들여 왜 했냐고?라고 물어본다면, 내가 전에 듣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말처럼 그 과정과 경험과 시간을 좀 더 밀도 있게 쓰는 데에 돈을 썼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격대비 효용성이 정말로 있는지는 아직 인생을 더 살아가봐야 알 거 같긴 하다.


심지어 한 번도 바라본 적 없는 무려 차석(?) 성적 우수 졸업생으로 졸업해 버렸다..! ㅎㅎ공로상도 받고 삼관왕의 영광을!

그러나 결론적으로 뒤돌아 봐도 MBA를 지금 이 시기에 하겠다고 마음먹고 실행한 것에 대해 후회는 전혀 없다. 맨 첫 번째로 열다섯 살의 나와했던 약속을 지켰으며, 지난 2년간 회사를 퇴근하면 다시 학생으로 출근하는 루틴에 적응했다. 처음엔 링거도 맞았지만은 이젠 퇴근하고 뭘 하던 거뜬하다.


졸업을 하고 나서 몇몇 친해진 동기 분들과 있던 며칠 전 저녁 자리에서도 우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나이차도 많이 나고, 산업군도 다르며, 비즈니스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돼서 만나는 건 아니다. 대화 중에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고, 서로 힘이 되어 줄 순 있겠다마는 당장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소중한 시간을 공유할까? 그렇게 직접적인 효용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일, 미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은 기업체도 사람도 꼭 필요하지만 어렵다.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들이, 경험들이 대화들이 축적되고 쌓여서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진 당장은 뾰족하게 모른다.


뭐 사실 나 말고 다른 동기들은 직접적으로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동기분의 회사로 이직을 한 사람도 있고, 산업군을 바꾼 친구도, 동종업계 더 큰 기업으로 간 친구도 있다. 그런데 그게 결과론적인 학위증서 때문일까? 아마 아닐 거다. 학위를 따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니까, 그렇다면 과정이 주는 베네핏이 분명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낯부끄러워 누군가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일기장인 브런치에만 기록해 보자면 내가 MBA를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나와의 화해와 인정,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혹독한 평가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고, 항상 아쉬운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아무렇지 않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항상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나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나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와 오기만 가득했었다.


그리고 내가 결핍을 느끼며 남들보다 부단히 노력하며,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사냐고 했던 지난 시간들 동안 무수히 깨지고 아파 보면서 내가 얻은 인생의 깨우침들이 나보다 먼저 산 인생의 선배들의 입에서 똑같이 나올 때, 지난 시간에 대한 확신도 많이 얻었다.


돌이켜 보니 서른 살이 넘는 동안 나도 나조차를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했는데, 감히 내가 타인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라는 철학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된거 같다.


이런 자아 성찰 뿐만 아니라 회사만 다녔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다양한 산업군에 종사하며 다양한 직무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내 시야가 넓어진 것도 사실이며, 많은 것들에 감히 깊다고는 못하겠지만 넓고 얕게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중에 박사를 해서 노후를 준비해볼까?라는 일말의 가능성과 준비요건도 갖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ㅎㅎ..)


그래서 이토록 뜻깊은 시간이 만들어 준건 사실 함께 해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물심양면 내 인생동안 항상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과 가족을 비롯하여 나한테 너는 잘될 거라며, 크게 될 거라며 항상 나조차도 의심 가는 내 잠재력에 대해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언니, 오빠, 친구, 삼촌(?), 아빠뻘 사람들, 나를 보고 존경한다며,, 그러니까 제발 앞으로 잘 되라는 귀여운 동생들도 생겼다.


뭐 그런 걸 2년에 오천만 원 넘게 주고 사냐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투자가 나중에 그 이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끔 하는 게 진정한 경영 실력 아니겠는가, 내 인생의 경영자로서 진정한 자산 운용 실력이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무적의 이론처럼 대차대조표처럼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계산이 안되기에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라는 것도 배웠다. 인생에 가치 있는 것들은 언제나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더 고귀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졸업 일기를 마친다.


그렇게 서른 한 살, 9월의 마지막 날 적는 척척 석사 완료 후기!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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