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모두가 모였다. 엄마가 식사 준비로 번거로울까봐 마트에서 밀키트나 사 갔다. 저녁으로 닭갈비 밀키트를 먹었고, 근황이나 소소한 이야깃거리는 식사와 함께 끝났기에 오라버니와 나는 거실에 뻗어있었다. 뒷정리를 하던 엄마가 번뜩 뭐라도 생각났다는 듯이 수납장으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다 같이 모여있을 때, 들어보려고 했다며 카세트테이프 여러 개를 꺼내놓았다. 오라버니와 나의 이름이 손글씨로 테이프 위에 적혀있었다. 요즘 세상에 이걸 어떻게 듣냐며 엄마를 타박했는데, 놀랍게도 엄마 집에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다.
오빠가 '형주'라고 적힌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어 재생시켰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랍게도 플레이어에서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려 35년 전의 목소리였다. 젊은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인 줄은 단번에 알겠는데, 목소리만으로 젊음이 느껴진다는 것도 새삼 신기했다.
엄마는 그 시절 아기였던 오빠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 부를까?" 오빠는 "뚕아지"라고 매우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남자 아기의 목소리는 너무 귀여운데, 그게 혈육인 오빠라는 게 조금 언짢았다. 이후 엄마와 오빠는 "뚕아지~ 뚕아지~ 얼룩 뚕아지~"를 어설프게 불렀다. 노래를 마저 다 부르기도 전에 아기 오빠는 "압빠!"를 부르더니 '학교 종이 땡땡땡'을 요구했다. 아부지는 "시작!"과 함께 학교 종이 땡땡땡을 불러주었다.
한동안 네 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세트 플레이어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그곳에는 다정하게 노래를 가르치고, 아이가 말 한마디 더 할 수 있게 수십수백 번 반복해서 발음하며 소리를 들려주는 지금 내 나이의 엄마가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부지도 애정 어린 목소리로 함께했다.
아부지 생신 선물로 오빠와 함께 준비한 용돈 봉투에는 '감사합니다' 문구가 적혀있었고,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해야될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저 35년 전 녹음한 테이프가 재생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