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보다 먼저 승무원 면접을 준비해보고 비행해온 언니가 아끼는 동생에게 얘기한다 생각하고 말할게. 대학생 때 부모님이랑 제주도로 여행 가는 길이었어. 아시아나를 탔는데 내가 앉아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승무원들 키가 꽤 커 보였어. 이륙 후 승무원으로부터 주스를 받아 마시는데 엄마가 말했지. "너도 승무원 한번 해보지 그러냐?"라고.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로 되받아쳤어. "무슨~! 난 승무원 관심 없어." 그렇게 서둘러 대화를 끝맺었던 것 같아. 이런 생각이었겠지. '내가 무슨 승무원이야. 내가 어떻게 승무원이 된다고. 키도 크지 않고 얼굴도 예쁘지 않은 내가 무슨...'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진짜 승무원을 준비하는 시기가 왔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어. "니가?"라는 시선을 혹시라도 받게 될까 봐. 사실 준비하는 내내 "내가?"라는 물음에 부딪히고 그럴 때마다 무너져내렸기 때문에 절로 움츠러든 모습의 내가 문제였던 거였지만.
인스타그램 승무원 웹툰 계정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능을 활용해 너희에게 질문을 던졌어. "승무원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가장 상처되는 말은 무엇이었나요?" 답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발언을 일삼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발언을 그대로 감당해야 했던 너네 생각에 마음이 아팠어.
ㅡ고3 담임 쌤: 거기 면접 가면 너보다 이쁘고 키 큰 사람들 많을 텐데...(내 표정 살피면서) 아ㅎ 잘할 거야~
ㅡ니가?? 이러면서 비아냥거리고 아래 위로 훑어보는 거요...
ㅡ승객한테 귀싸대기 안 맞으면 다행이다
ㅡ아무래도 외모 얘기ㅠㅠ 자꾸 듣다 보니 위축돼서 승무원이 되고 싶단 말을 아예 꺼내지 않게 되었어요
ㅡ너가?(비웃음) 키가 작아도 가능해?(비웃음) 요즘 승무원은 얼굴 안 보나 봐?
ㅡ제 얼굴 계속 보다가 넌 어디 고치고, 필러는 꼭 해야겠다 하더라고요
ㅡ항공에 전혀 문외한 남자들이 제 얼굴 평가하면서 넌 대한항공상까지는 아니고 LCC 상이라고 했을 때
ㅡ승무원을 꿈꾸는 고3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승무원이 꿈이라고 말하면 '승무원은 예뻐야 되잖아'라는 말이 가장 상처였습니다. 저 말속에는 '너는 안 예쁘니까 못할걸'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으니까요...
ㅡ넌 안 예뻐서 안 돼
10년 전 내가 승무원을 준비할 때랑 똑같구나. 아니, 더 심해졌구나 싶었지. 나는 승무원 학과나 학원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외모를 지적당하는 발언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 대신 스터디를 정말 많이 했는데, 가끔씩 답변 내용이나 자세가 아니라 외모를 언급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바꿀 수도 없는 외모 말고 바꿀 수가 있는 부분을 짚어달라고 말했지. 물론 성형을 고려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내게 성형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어.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승무원이란 직업에 도전하기 위한 성형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너희도 스스로 지키고 싶은 가치에 따라 살아갔으면 좋겠어. 나를 향하고 내게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누군가의 목소리나 압박에 좌우되어선 안 되는 거야.
어쨌거나 승무원이란 직업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항공사의 변화와 노력은 아마도 더딜 테고, 그 과정에서 승무원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 세 가지가 있어.
첫째, 외모 때문에 좌절하지 않기. 물론 외형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방식의 면접에서 떨어지면 본인의 몸과 얼굴을 탓하기 쉽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들의 면접 방식과 의도부터가 잘못되었는데 거기서 낙오되었다고 절망한다면 그것도 너무 억울한 일 아닐까? 우리가 그들의 전략에 휘둘린 건 아닐까?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말라지고 시술과 수술로 보다 아름다워져 승무직에 도전하길 바라는 건 아닐까?
우리부터 먼저 승무원이란 직업의 역할을 바로잡도록 하자. 승무원은 승객을 안전하게 도착지까지 모시고, 비상시 승객의 긴급 탈출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 기내에 화재가 발생했을 땐 소방관이 되어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고, 아픈 사람이 나타났을 땐 간호사가 되어 긴급처치를 해내고, 불법행위가 일어나면 경찰이 되어 제재를 가하기도 하는 다양한 역할을 가진 사람이잖아. 이처럼 우선적으로 타인의 안위를 위해 일하는 승무원에게 가느다란 팔다리와 완벽한 어피어런스가 대체 무슨 소용일까? 우리부터 똑바로 생각해야 해. 내가 왜 승무원이 하고 싶은지, 승무원이란 직업을 통해 나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지를 바로잡는 게 최우선이야. 그다음 면접에서 자신만의 마인드가 드러나도록 어필하는 거지. 외모를 뛰어넘을 만한, 면접관들의 정신을 바짝 깨워줄 만한 진짜 승무원직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원자가 되자는 거지.
둘째, 친구들끼리 외모 얘기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기. 모의면접을 할 때도 승무원 학원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에게 외모 지적은 충분히 받아왔잖아. 그들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만난 무례한 사람들은 우리 외모에 관심이 참 많고 친절하게 묻지도 않은 의견을 이야기해 주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어떤 말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무뎌지지 않은 채 네게 머물러 있을 거야. 외모를 향한 이미지와 말은 이미 도처에 널려있어. 그러니까 친구들끼리라도 내가 요즘 살이 쪘네 마네, 피부가 좋네 안 좋네, 코 수술을 할까 말까 등 이런 식의 대화는 하지 않길 바라. 그 말을 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관심과 시선이 외모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야.
내게도 외모 얘기를 유독 과하게 하는 친구가 있어. 그럴 때마다 "으휴, 무슨 소리야~!"라고 말하며 화제를 돌려버려. 나는 친구의 외모가 나아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친구의 마음 상태와 하는 일이 나아지길,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니까. 마찬가지로 나는 내 외모가 나아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랑하는 대상에 집중하고 싶으니까.
외모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 느낄 거야. 지금까지 얼마나 쉽게, 자주 외모에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해왔는지. 그리고 또 알게 될 거야. 외모 말고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건강하고 유익한 대화 주제가 얼마나 많은 지도.
셋째, 승무원이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플랜 B를 생각하기. 승무원들이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뭘까? "승무원? 요즘에 뭐 한대? 월급은 나온대?" 이런 말들 아닐까. 코로나 때문에 비행을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물어보곤 하겠지. 지금 코로나로 항공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잖아. 코로나 사태가 계속 이어지자 강제 휴직 상태였던 승무원이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기도 했고. 서른 살 넘은 승무원들도 지금에 와서 고민하고 있어. "승무원을 안 하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다들 승무원으로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비행길이 막혀버린 사태가 벌어졌잖아. 여기서 이제 두 그룹으로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아. 승무원 이외에는 뭘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사람과 이번 기회에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이나 한 번 시도해볼까? 하는 사람으로 말이야.
"한 우물만 파라" 이 소리가 더 이상 미덕인 시대가 아니야. 코로나 덕분에 더 잘 알게 되었지. 시대와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고, 나의 성향이나 관심사도 때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어. 한 우물만 파는 건 이제 위험한 일이야. 계속해서 한눈팔고, 딴짓을 해야 해.
나는 월급이 두 달 이상 밀리면서 퇴사를 결심했어. 그리고 운이 좋게도 퇴사한 직후 출간 계약을 하게 되어서 이렇게 책을 쓰고 있지. 그간 비행하면서 써온 글과 그림으로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서 승무원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책을 출간한 이후에는 정식 출간 작가가 되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어. 꾸준히 쌓아왔던 콘텐츠가 없었더라면 월급이 안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그만둘 수는 없었을 것 같아.
다른 항공사의 한 친구는 5개월째 월급이 밀리는데도 마이너스통장까지 끌어다 쓰면서 버티고 있더라고. 코로나가 지나가면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는 바람으로.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지만, 막연히 버티고만 있는 친구는 정말 힘들 거야. 그러다 회사가 파산하거나 해고를 당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지. "나 뭐해 먹고살지. 내가 잘하는 일은 뭐지.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너네들이랑 똑같은 고민을, 몇 년을 승무원으로 일한 다음에도, 나이 서른이 훌쩍 넘고도 계속하는 거야. 지금은 승무원만 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 생각하지? 나는 그랬어. 월급 안 줘도 비행만 시켜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던 나잖아! 그런데 취업한 이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져. 나는 비행으로 돈벌이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글쓰기란 일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잖아. 첫 번째 취업으로, 첫 번째 직장에서 연봉부터 시작해 적성에 잘 맞는 것까지 모든 걸 다 해결할 순 없어. 한방에 해치우려고 하지 마. 인생에 한방이 어딨어. 나부터 내 인생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 말자고.
경제학자 김영희 교수가 미래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어. "직도 좋지만 업을 가지세요. 부장, 이사, 사장은 오래가는 직이 아닙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자기 스스로에게 투자하세요"라고. 여기서 말하는 직(職)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맡은 직위나 직무에 따라 하는 일을 뜻하고, 업(業)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의미해. 승무원은 하나의 직종일 뿐이지, 업이 될 수는 없어. 승무원이란 직업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묵직하게 가지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이거 아니면 난 안 된다는 집착으로 스스로를 더 옭아매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따온 문장을 소개하며 마칠게.
"만약 당신이 한눈팔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이곳까지 왔다면, 그래서 당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면, 당신은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에 계속 걸어가야 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자신을 아끼면서 이곳까지 왔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걸어오는 동안 발견한 풍경들을 감상하며 이곳에 도달했다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걸을 것인가, 쉴 것인가,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그 길을 걸으면서 풍경도 만끽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린 다음 흙도 한 번 만져봤다가, 땅도 한번 파봤다가, 나무도 쓰다듬어보는 거지. 그러면 어떤 길목에선 선택할 때가 올 거야. 이 길을 계속 갈 것인지, 살짝 돌아갈지, 아니면 아예 방향을 틀어버릴지.
너희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려보고, 공부하고 다른 일에 도전해볼 거야. 계속 딴짓하고 한눈팔면서 나의 길을 찾을 거야. 각자의 길이지만 건너편에, 반대편 차선에 서로가 있으니까 혼자서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나가다 보이면 인사해 주고, 우리끼리라도 응원하고 격려해 주자. 너그러운 목소리가 널리 널리 퍼지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CnOGjo-0w
얼마 전, 유튜브 방구석조종사에 출연해서 두발자율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예전에 써두었던 원고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나는 멈춘 비행기의 승무원입니다』 책에도 썼지만, 저는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항공사에서 두발자율화를 시행하기 위해 앞장섰어요! 오랜 시간 비행하며 꾸밈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함이었는데요. 비하인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유튜브 방구석조종사 채널에 저의 인터뷰 영상과(직장인으로서 책을 쓰기까지 기록했던 저만의 비법도 담겨 있습니다!) 책에서 찐하게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영업 성공?)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604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