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스타의 남다른 기내식 클라스

by 우자까


2018. 05. 01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이었다. 웬만한 연예인보다 충격적인 비주얼의 여인이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했다. 다리가 얼마나 빼빼 말랐는지 내 팔뚝만 했다. 탑승권을 내미는 손목은 너무 가녀려 톡 하고 꺾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언뜻 본 손등에도 살이라곤 없어 뼈대가 다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좌석 안내 후 몰래 뒷모습을 살펴봤는데 마치 종이 인형이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륙 직전 그를 본 후배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어머, 어머! 선배님, 저 손님 몰라요? 인스타에서 완전 유명해요! 저도 인스타 팔로잉하고 있었는데! 진짜 말랐다. 예쁘긴 또 엄청 예쁘네…! 쇼핑몰로 대박 난 여자예요. 한때 누구 전 여자친구로도 떠들썩했었어요."

과연 그는 SNS 스타답게 화려하게 예뻤고 키도 컸으며 피부까지 좋았다. 그리고 지나치게 말랐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다른 남성 승객들이 힐끔거리며 그를 훔쳐보았다.


그는 메인 식사 전에 제공하는 음료로 물만 두 잔을 마셨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맥주나 와인을 시키고 칵테일까지 즐기는 다른 승객들과 비교되었지만, 나야 서비스하기에 편하니 좋기만 했다. 음료 서비스가 끝나고 곧바로 식사 서비스에 돌입했다. 이번 달 메인 요리는 비프 라자냐였다. 얇은 반죽 사이사이에 비프 소스를 넣고 오븐에 구워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를 살짝 뿌린 요리였다. 한눈에 봐도 칼로리가 높을만한 음식이었다. 승객들은 고분고분 라자냐를 받아들었고, 나는 마지막 트레이를 들고 제일 끝줄에 앉은 SNS 스타인 그에게 다가갔다.


“기내식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식사는 라자냐입니다. 식사와 함께 다른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네??? 라자냐요? 다른 거 없어요?” 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뜸 물었다.

“죄송합니다. 장거리 노선에는 기내식 종류가 다양하게 있지만, 단거리 노선에는 기내식이 한 종류만 실려서요. 오늘 준비된 기내식은 라자냐뿐입니다.”

“아…. 그럼 과일 없나요?”

“네…. 그것도 장거리 노선에는 실리는데….”

“요거트는요?”

“죄송합니다. 없습니다. 그것도 장거리나 중거리 노선에만….”

“저지방 우유는요?”

“죄송합니다. 저지방 우유는 없지만, 일반 우유는 있습니다.”


그는 가뜩이나 큰 눈을 둥그렇게 치떴다.

“살 안 찌는 거 뭐 없어요?”

그의 좁고 야윈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잠시 기내식 트레이를 내려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여기 보시면요. 애피타이저를 더 드시겠습니까? 가지 샐러드랑 살짝 양념된 삶은 새우를 더 가져다드릴게요. 크림치즈 위에 올린 오렌지도 함께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는 그제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알아서 살 안 찌는 것들로 준비해 주세요.”

갤리로 돌아와 라자냐는 가만히 두고 옆으로 애피타이저를 옹기종기 예쁘게 쌓아 올렸다. 직사각형인 하얀 사기그릇 왼쪽에는 가지 샐러드를 모아놓았고 오른쪽으로 새우 여섯 개를 두었다. 가운데에는 크림치즈가 밑에 깔린 오렌지 두 쪽을 두어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다.

“여기 애피타이저 더 준비해 드릴게요.”

“어머, 이것도 너무 많은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아닙니다. 원하시는 것들이 다 없어서 제가 죄송하죠. 아무쪼록 맛있게 드십시오.”


그는 가는 손목을 들어 올려 더 얇고 가는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먹어야 저렇게까지 마를 수 있구나. 그에 비하면 내 손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기 손 같았다. 식사가 마무리됐을 때쯤 접시를 회수하러 갔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커피나 녹차 준비해 드릴까요?”

“아뇨. 저 그냥 물 주세요. 물이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가 먹은 기내식 트레이를 치우기 위해 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트레이가 아주 가벼웠다. 트레이를 내려다보니 그가 기겁했던 라자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더 가져다주었던 애피타이저 역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뭐지? 그는 오히려 다른 승객들보다 라자냐에 추가된 애피타이저까지 더 많은 양을 먹어버린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쇼핑몰을 운영하고, SNS 스타이기에 몸매 관리에 철저했던 그도 하늘 위 기내식의 유혹을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비행을 마치고 호들갑 떨던 후배와 함께 전철을 타러 갔다. 후배는 종이 인형 같던 승객을 찬양하며 말했다.

“어휴. 내일부터 진짜 저도 다이어트해야지. 비행하면서 살만 찐 것 같아요.”

“지금도 예쁜데…. 무슨 다이어트에요. 그 사람은 대형 쇼핑몰 모델이잖아요.”

후배는 내게 따지듯이 대답했다.

“선배님은 몰라서 그래요! 살 잘 찌는 체질이 얼마나 스트레스인데요.”


후배는 누가 보아도 늘씬하다고 생각할 모습이었지만, 별다른 할 말이 없어 웃어넘겼다.

마른 여자건 뚱뚱한 여자건 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그래도 나는 마른 몸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다. 그건 바로 내 몸을 아끼면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는 태도다.


여성 심리학을 가르치는 러네이 엥겔른은 몸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한다. 다리를 몸에서 가장 섹시하고 매력적인 부분이라 생각하며 운동을 할 게 아니라, 다리로 춤을 추고 달리고 일하고 원하는 곳으로 가고 운동까지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것보다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몸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소리다.


지나친 다이어트와 식이요법으로 몸에 무리를 주고, 거울에 비친 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해진다면 그날 하루도 망쳐버리기 십상이다. 나를 위한 하루의 즐거움을 마련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에너지와 스태미나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을 외면한다면, 기력을 잃는 사람 역시 나 자신뿐이다. 오늘 만난 SNS 스타가 라자냐에 기겁하면서 칼로리 낮은 음식만 찾다가 결국 싹 다 먹어치운 모습이 나는 통쾌하게까지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그토록 신경 쓰던 몸매에서 벗어나 정말 오래간만에 몸의 욕구를 받아들인 것인지도 몰랐다. 정작 그는 뒤돌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다이어트하겠다는 후배를 비롯해 나의 친구, 언니, 동생들이 먹고 놀고 춤추고 일하고 즐기면서 자신의 육체를 건강하고 성실하게 소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나도 한때는 종아리 알이 단단하게 박혀있는 내 다리가 싫었지만, 지금은 이 튼실한 하체 덕분에 별 탈 없이 하늘 위에서 걷고 또 걸으며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구수한 된장찌개 앞에서 감동하고 동네 한 바퀴를 걷다가 들어와 이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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