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올라타니 아부지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다짜고짜 물었다. 누구 딸인데 차이겠냐는 말로 맞받아쳤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올림픽공원에서 좋아하는 남자애와 저녁 산책을 한 시간 반 동안 하고 온 참이었다. 나와 그 남자애는 학교 운동장이나 학교 앞 분식집에서 짧은 만남을 간간이 가졌는데, 남자애를 너무 좋아하는 내게 그것만으로는 아쉬웠다. 나는 남자애와 매점에서 사온 빵을 운동장 벤치에 앉아 같이 먹으면서 오늘 저녁 7시에 올림픽공원에서 만나자고 호기롭게 제안했다. 사귀자고 고백할 요량이었고 그러자면 고백이 이루어지는 배경은 송파구에서 명성이 자자한 올림픽공원 정도는 되어야 했다.
집 나설 채비를 하는데 아부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 학원 가느냐고 묻는 말에 나는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고백하러 간다 말했다. 아부지는 양복 재킷을 벗으려다 말고 다시 입더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진짜냐고 마냥 해맑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 떨리던 참이었는데 아부지와 함께 간다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아부지는 내가 고백에 성공한 다음 남자애와 손잡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탄 내게 아부지는 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아부지의 지원을 받아 사귀었던 남자애와 언제 헤어진 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리 부녀지간은 그 후 더 특별해졌다. 나는 아부지에게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처음으로 클럽에 가려고 작정했을 때도 아부지에게 말했다. 아부지는 별다른 말없이 언제 가는지만 물었고, 가기 전날 오후에 백화점으로 나를 불렀다.
"우리 딸, 이제 다 커서 클럽도 가보는데 아빠가 옷 한 벌 사줘야지. 제일 섹시한 걸로 골라봐라."
나는 꺅꺅, 아빠 최고를 외치며 반짝거리는 스팽글이 잔뜩 박힌 짧은 원피스를 골랐다. 아부지는 즐겁고 안전하게 놀다 오라는 말과 함께 계산을 마친 원피스를 건네주었다. 클럽 조명 아래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스팽글 원피스 덕분에 몸을 흔들어대는 맛이 있었다. 젊은 남녀가 모이면 으레 그렇듯 나와 친구들은 의식하지 않는 척하지만 굉장히 의식하며 다분히 의도된 몸놀림으로 뭇 남성들의 시선과 추근댐을 만끽했다. 클럽에서 새벽까지 노느라 머리칼에 밴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피로한 모습으로 아침 식탁에 앉은 내 모습에 엄마와 아부지는 그저 웃었다.
대학 시절, 몇 번 더 클럽을 다녀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을 읽으며 개뿔, 짧으니까 청춘이란 생각으로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승무원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한 번은 면접장에서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아부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부지는 일하다 말고 집에 들러 신분증을 챙겨 면접장으로 가져다주었다.
승무원이 되고 난 후에는 유니폼 앞치마를 챙기지 않아 김포공항에서 또 아부지에게 전화했다. 아부지는 다시 또 일하다 말고 집에서 유니폼 앞치마를 집어들고 김포공항으로 달려왔다. 앞치마 없이도 요령껏 일할 수 있는데 그때만 해도 쫄보인 신입이던 나는 든든하면서도 제일 만만한 지원군인 아부지를 부려먹는 쪽을 택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부지는 자주 내게 미안해했다. 더 좋은 집에 살게 해주지 못해서, 공주 침대에서 나를 재우지 못해서, 비싼 학원에 등록해 주지 못해서, 용돈 한번 크게 주지 못해서, 못해서 못해서 못해서.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한다더니 우리 아부지도 딱 그랬다. 심지어 우리 아부지는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기에 더 그래 보였다.
같이 술 마시던 친구가 자기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라 못 참겠다가도 식구들은 그게 가장의 마지막 남은 권위라 생각하고 넘어가 준댔다. 나는 술잔을 들다가 가부장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고, 가장으로서 미안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 아부지의 마지막 남은 권위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가 뜨거웠다.
승무원으로 생활하며 독립을 했다. 자취 생활을 하면서도 주변에 따뜻한 언니들과 살뜰히 챙겨주는 친구들이 많아 외롭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시간에는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마음을 다듬었다. 내게는 모두 생활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아부지 딸로 길러지면서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와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자리 잡은 내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불행에 몰두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가진 불행과 불운에 집중하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하나둘씩 나타났고, 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받아먹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1년, 2년이 넘게 정신과에 다니는 친구는 그 비용만도 어마 무시했다. 그런데도 친구가 내린 결론은 완전한 치료는 불가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조금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직면한 현실이란 대개 부모로부터 비롯된 문제였다.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는 내 이야기를 평온하게 들어주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 딸이 결혼하는데 시집갈 돈을 주지 못한 아부지는 또 미안했다. 이제는 노후 준비에 급급한 나머지 내게 줄 유산이 없어 미안해한다. 그렇게 또, 미안하고 미안해한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밤마다 「이태원 클라쓰」를 보는데 아부지 생각이 났다. 박새로이는 아버지가 물려준 정신으로 끝내 성공을 이룬다. '사람은 소신 있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자신의 소신으로 성공의 의미를 재정립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소신대로 사는 박새로이 모습에 시청자들은 빠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이는 다른 무엇도 아닌 아버지의 정신적인 유산으로 멋있는 삶을 일궈냈다.
지식은 쌓으면 되고 공부는 하면 된다.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은 바로잡으면 되고, 틀린 문제는 정답을 확인하고 오답노트라도 만들면 된다. 성격과 성향은 공부하거나 갈고닦으면서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길러지며 고착화되는 영역이다.
아부지는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 사람이다.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얼마나 안온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부지 앞에서 나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고백하러 가고, 있는 그대로 클럽에 가서 유흥을 즐기고, 있는 그대로 무쌍꺼풀에 밋밋한 얼굴로도 용기 내서 승무원 시험을 보러 다녔다. 흔하디흔한 쌍꺼풀 수술을 해볼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까닭도 그냥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사는 게 당연해서였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나와 상대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자세. 존중이란 그런 자세에서 나오는 정신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부지로부터 돈으로 채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성정을 물려받았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수십 수백억의 유산을 물려받은 거나 다름없다.
이제 나도 새로이처럼 아부지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내 삶을 멋들어지게 가꾸어나갈 작정이다. 그 유산은 정말이지 차고 넘쳐, 나는 벌써부터 넉넉한 기분이 든다.
'네게 못해줘서 아빠가 미안해' 아부지 가슴에 단단히 자리한 이 한 문장을 알기에 저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빠 이슬아라는 작가 모르지? 요즘 MZ세대에게 대세인 작가인데... 나보다 어리거든? 근데 작가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어. 출판사를 차려서 자기 부모를 직원으로 다 고용했다니까.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제목도 어쩜 『가녀장의 시대』야... 나도 내가 성공해야지. 쫌만 기다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