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나랑 이태원이나 가자

by 우자까

그러니까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어째 더 마른 것 같다.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 아부지의 얼굴은 한 번씩 볼 때마다 늙어있다. 아이 크는 모습에 세월 가는 걸 느낀다는데, 나는 요즘 부모의 흰머리와 주름진 손등에서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 꼴이 억울하기도 하고 미워서 나는 내 부모의 손을 잡고 HIP한 PLACE로 향한다.


한때는 이태원에 꽂혀서 아부지를 데리고 자주 갔다. 경리단길에서 갈릭버터새우를 먹고 츄러스와 우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음악 소리가 크게 나오는 라운지 바에 앉아 칵테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아부지는 연신 "여기서 내가 나이 제일 많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눈치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잘 먹고 잘 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삼십 대의 남녀가 삼삼오오 어울리며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춤도 췄다. 아부지는 젊은이들의 춤사위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게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었다.


이태원에 있는 인도 커리집에서는 커리를 한 번 찍어 먹어보더니 3분 카레와는 또 다른 맛이라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밥 한 공기를 찾는 아부지에게 커리는 난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난을 난생처음 먹어보는 아부지가 김치를 찢듯이 조심조심 찢어대는 모습에 나는 촌스러워 죽겠다고 구박했다.


허니버터브레드가 유행해 모든 카페에서 선보일 때는 아부지에게도 그 폭신하면서도 달달한 맛을 알게 해주었고, 요거프레소의 딸기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찾아다녔다. 얼마 전에는 익선동 골목에 자리한 경양식 돈가스집에서 돈가스를 먹고 한옥 카페에서 장미차를 마셨다. 나와 가는 게 아니라면 아부지 혼자서 부러 먹으러 가지 않을 음식과 동네였다. 나는 바로 그런 곳에 아부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장소,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음식, 비싸기만 한 대신 인테리어가 예뻐서 사진 찍기에 좋은 곳. 그런 곳에서 아부지와 함께하고 있으면 아부지가 늙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요즘엔 아부지와 북카페로 향한다. 시원한 커피 한 잔에 탁 트인 공간에서 읽는 책의 맛. 이 역시 아부지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짓이다. 누구를 만나지 않는 이상 오육천 원씩 하는 커피를 시켜놓고 혼자 카페에 앉아 있을 리 만무하다. 굳이 데리고 가서 책을 안겨 주었더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서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봤기에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우리가 자주 가는 북카페는 탁 트인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한강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책은 판매도 하지만 카페 내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서 자리로 가져와 읽어도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부지에게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책을 가져다주었다. 아부지는 올해로 64세였다.


"아부지,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76세 때 대통령에 당선되었어. 켄터키 할아버지는 65살에 KFC를 창업했고. 이 책을 쓴 박막례 할머니도 칠십이 넘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야. 치매 판정을 받고 시작한 유튜브가 대박난 거지. 읽어봐."


아부지에게 책을 안겨주고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북카페 2층으로 올라갔다. 어떤 책을 읽을지 둘러보다가 1층 전경을 바라보았다. 홀 가운데 부분이 뚫려있어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집어든 책 속에 빠져있었고, 그 위로 따뜻한 햇살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다 1층 구석에 앉아 안경을 벗고 목을 수그린 채 고개를 처박듯이 책을 읽고 있는 아부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결국 노안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는 아부지였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작고 귀여웠다. 아부지가 날이 갈수록 작아지고 귀엽게 보인다. 나는 아직 아부지를 큰 사람으로 보고 싶은데, 무참히 흐르는 세월이 아부지를 자꾸만 작고 귀엽게 만든다. 내게는 그게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저기 구석에서 책 읽고 있는 아부지가 보이시나요? 휴, 귀엽죠.

부모에겐 자식이 아니라면 가보지 않을 장소와 먹지 않을 음식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도, 다 커버린 지금도. 세계 여행은 못하더라도 세계 음식들은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잖아요. 돼지갈비나 한식같이 부모님이 지인과도 쉽게 갈 수 있는 곳 말고, 우리가 굳~이 끌고 가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볼 동네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부모님과 다녀와 보세요. 낯선 곳에서 어색하면서도 신기해하는 내 부모의 모습이 꽤나 귀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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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 경리단길에서 갈릭버터새우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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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거리 한복판에서 양손으로 브이를 만들던 아부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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