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똑같은 장갑이 하나 더 있다

by 우자까


참 오래된 장갑이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까닭

미루고 미루다 장갑을 보관하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이제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러야 할 날씨였다.


메트로시티 갈색 가죽 장갑. 상자 안에는 장갑의 짝이 맞지 않게 들어 있다. 똑같은 장갑인데 왼쪽은 두 짝씩, 오른쪽은 한 짝만. 십 년 가까이 된 이 장갑은 이제 주름도 많이 지고 때가 타 수명을 다해 보인다.


짝이 맞지 않는 장갑을 가지게 된 연유를 짚고 넘어가자면 내 첫 남자친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뚱목이 미안).


때는 스무 살로 소위 명문대에 다니는 오빠를 사귀게 되었는데 서울에 살면서 수도권 대학으로 통학하느라 아침마다 광역버스를 타던 나는, 심지어 그 버스는 우리 집 앞 정거장에 매번 만석으로 왔으니, 그래도 명색이 대학생이라고 멋 부린다며 뾰족구두라도 신고 나온 날엔 한 시간가량을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에서 발끝에 힘주고 서있느라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혼이 나가있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왕복 두 시간을 차도 위 버스에서 보내다가 왜 서울에 살면서 인서울을 못한 것인가,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봉사활동"에서 만난 "명문대"에 다니며 키는 작지만 "얼굴은 훈훈"했던 "옵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냥 멋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옵빠는 내가 성인이 된 뒤 사귄 첫 남자친구였고, 생일 선물인지 크리스마스 선물인지 지금은 비록 기억나지 않지만 이 메트로시티 장갑을 사주었다.


소중한 첫 남친이 준 선물이니 잘 끼고 다녔어야 하거늘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가방이나 파우치에서 자꾸 뭘 꺼낼 때마다, 특히 아이라이너나 립스틱같이 얇거나 작은 물건을 집을 때에는 장갑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자꾸만 벗어재꼈고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장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온 가방과 외투 주머니를 뒤져보며(밖에서 잃어버리고선 꼭 집에 와 찾는다) 쌩난리를 피웠다. 엄마가 어디 치운 것 아니냐며 채근하기도 했다(뭐만 없어졌다 싶으면 "엄마 그거 어딨지?"). 장갑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고 나는 다음에 옵빠를 만날 때까지 무어라 변명을 할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내가 준 선물을 잃어버렸냐며 실망할 옵빠 모습에 낙담했다.


이삼일 뒤였나. 그날도 광역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녀온 내 책상 위엔 메트로시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는데, 잃어버린 장갑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똑같은 모양이지만 분명히 새것인 장갑이. 낚아채듯이 장갑을 잡아 거실로 뛰쳐나갔다. 엄마는 가스레인지 앞에 있었고 아부지는 주방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네 아빠가 사다 놓은 거지!" 남이 들으면 성질내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성질내는 건 또 아닌 엄마가 성질내듯이 말했다. 아부지는 천연덕스럽게 그게 그거 맞냐고 물어보며 내 반응을 살폈다. 엄마는 혀를 쯧쯧 차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다.


당시 우리는 송파구에 살았기에 아부지는 집에서 가까운 잠실 롯데백화점에 갔다. 왼쪽 장갑 한 짝만 들고서. 그런데 메트로시티 잠실점에는 똑같은 모델의 장갑이 없었다. 한 쪽 장갑을 들고 서있는 아부지에게 점원은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에 가면 같은 장갑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장갑은 아부지가 명동 본점까지 출두해서 가져오는 수고를 입은 장갑이었다. 다음에 옵빠를 만날 때 나는 잃어버리지 않았던 척 새 장갑을 태연하게 끼고 나갔고, 그 후로도 부지런히 꼈기에 옵빠는 내가 그 장갑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옵빠랑은 진즉에 헤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오랜 세월 이 장갑을 버리지 못한 까닭은 아직 쓸만해서도 아니고(메트로시티라고 마구 박혀 있는 로고가 촌스럽기도 하거니와 검은색이나 회색도 아닌 갈색 빛깔은 옷에 잘 어울리지도 않기에), 첫 남친을 못 잊어서는 더욱 아니다(여보 사랑해).


딸이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의 선물을 잃어버려 심란해할 때,

똑같은 장갑을 구하기 위해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명동 본점까지 다녀온,

아부지의 그 기꺼운 마음을 여전히, 고이고이 기억하고 싶어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여전히 대단하게만 느껴져요. 친구들 대부분은 남자친구의 존재조차 부모가 모르게 했거든요. 저는 10대와 20대 시절 만났던 모든 남자친구를 아부지에게 말하고 연애 상담도 받았는데요. 가끔 아부지 앞에서 말하기 꺼려지는 남자친구는 개차반임을, 말하다가 절로 깨닫곤 했했습니다. 혹시 아부지는 그래서 저로 하여금 다 말하게끔 만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