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그만 좀...
전기장판을 사들고 아부지 집에 갔다. 엄마가 먼저 지방으로 내려간 이후 아부지는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야무진 사람이라 끼니 챙겨 먹는 건 걱정되지 않았지만, 혼자 잠드는 잠자리가 유독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마트 전기장판 1인용 싱글매트가 아부지 침대 위에서 따뜻하게 데워지길 바랐다. 손발부터 시작해 엉덩이랑 허리를 후끈하게 만들어, 그 따뜻한 열기 속에서 아부지가 숙면하기를 말이다.
한 손에 두툼한 전기장판을 들고 있느라 뒤뚱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그저께 만났었는데도 아부지는 나를 오랜만에 본 것처럼 반가워하며 맞았다. 나는 전기장판이나 건네며 오늘 밤에 한 번 써보고 쓸만한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엄마나 내가 없는 집에는 자스민이나 캐모마일 같은 차가 없었다. 찬장에는 둥글레차랑 믹스 커피, 카누 아메리카노 따위가 섞여 있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아부지는 믹스 커피를 마셨다. 아부지가 만날 때마다 묻는 말이 있는데, 그저께도 물어본 말을 또 했다.
"그래. 회사는 별일 없고? 비행은 어때."
나는 이틀 전에 아부지를 만난 뒤로 비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별일 있을 것도 없지 뭐. 아, 그러고 보니 공지사항 확인할 게 있는데... 아빠 노트북 좀 잠깐 써도 돼?"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바로 밝혀졌다. 전원을 끈 게 아니라 얼마간 사용하지 않아 화면만 자동으로 꺼져 있던 거였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블클릭하니 이미 켜져 있던 창이 함께 열렸다. 그 창에는 '98명 태운 카자흐스탄 여객기 이륙 직후 추락 사고. 최소 12명 사망'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나는 모니터에 띄워진 기사를 읽으며 말했다.
"항공기 사고 기사 보고 있었어?"
"아아, 그거. 어제 그렇게 사고가 났더라고."
내가 비행을 시작하자 아부지는 항공기 사고 기사가 유독 눈에 띄고, 찾아보게 된다고 했었다.
"아빠 아직도 항공 사고 기사 찾아봐?"
아부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너 승무원 한 뒤로 매일같이 보고는 있지."
나는 그제야 아부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아빠! 내가 비행이 몇 년 째인데 그래. 자동차 사고 사상자에 비하면 항공기가 자동차보다 180배나 안전하다고 그랬잖아. 확률적으로도 사고 자체는 매우매우매우매우 드물다고."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이동거리로 볼 때는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게 맞아. 그런데 기준을 여행시간으로 바꾸면 버스가 가장 안전하고 그다음이 기차, 그다음이 비행기야. 이걸 또 여행객 숫자 대비 사망자 수로 보면 버스-기차-자동차 순이고, 항공기는 순위가 더 낮아."
또 어디서 항공 관련 기사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사고 한번 나면 기장이나 승무원은 물론이고 승객 대부분, 혹은 전원이 사망할 수밖에 없잖아."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 지금 딸이 승무원인 거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안 죽어 안 죽어~! 그래서 내가 비행기 사고 안 나게 하려고 타는 거잖아. 하여간 걱정 하덜덜 말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부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표정이 진지해서 더 웃기기만 했다. 카자흐스탄 항공기 사고 기사가 띄워진 창을 닫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업데이트된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내일 아침 비행 전에 숙지해야 할 사항을 메모하고 일어섰다.
아부지는 지하철역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내일 비행도 잘 다녀오라며, 힘들겠다고 얼른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내가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소화해내는 비행 스케줄은 아부지 앞에만 가면 엄청나게 대단하고 힘든 일로 그 덩치가 커졌다. 아부지는 나보다 기압차가 몸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던가 우주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은 항공 경로 같은 것을 잘 알았다. 가끔씩 관련된 인터넷 기사 링크가 카카오톡으로 왔다. 클릭해서 볼 때도 있었지만 안 볼 때도 많았다.
평일 오후라 지하철은 한산했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 아부지와 카카오톡으로 그간 주고받은 대화를 빠르게 훑었다. 내가 비행으로 외국에 나가있을 때, 한국에 들어와 보고 싶었던 남자친구를 제일 먼저 만날 때, 언니들과 밤늦게까지 수다 떨 때, 그럴 때마다 먼저 오는 아부지의 카톡들은 한결같았다.
딸. 비행은 잘 하고 있나.
별일 없지를?
전철이 마곡대교를 지나며 창문으로 하늘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의 일터인 하늘은 한국에서 보아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보아도 매번 아름답기만 했다. 나는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얼마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부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틀림없이 나를 떠올릴 테지. 어쩌다 비행운을 만들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아도 나부터 생각할 텐데. 지금쯤 딸이 어디를 날아다니고 있을지 가늠하며, 혹시라도 항공기 사고 소식을 접한 날이면 더욱 마음을 조릴 텐데...
자식인 나는 아마도 평생 아부지를 완벽하게 안심시켜드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태연하게 안심하고 비행할 수 있는 까닭은 아부지 마음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때문이라도 나는 별 탈 없이 안전하게 비행을 이어나가게 된다. 오늘 밤은 전기장판이 안전하게 작동돼 아부지의 심신을 따뜻하게 해주기를 나 역시 바라본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선 아부지가 또 아이가 되잖아요. 운전 조심해서 해라,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 한잔부터 마셔라, 내복 챙겨 입어라, 담배 좀 끊어라... 아부지는 그렇게 할 생각도 없으면서 일단 예예, 하죠. 그렇게 우린 부모 앞에서 기꺼이 아이가 되는가 봅니다.
부모가 자식 걱정을 하던 때에서 자식이 부모 걱정을 하게 되는 때로, 그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제가 부쩍 아부지 걱정을 하거든요. 걱정해야 되는 일이 늘었거든요. 같이 밥을 먹다가 이가 아파 미간을 찡그리는 아부지에게 치과 좀 제발 가라고 잔소리, 부정맥으로 한 번씩 호흡 곤란이 찾아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스트레스 받지 않게 주의하라고 잔소리. 무릎 관절이 안 좋아 걷는 게 부자연스럽게 보일 때면 스트레칭 꼭 하라고 잔소리. 괜히 성내며 잔소리를 하는 건 제가 괜히 속상하고 미안해서인 것도 같아요. 그렇게 될 때까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내 탓도 있는 것 같아서요. 아부지도 제가 아프거나 걱정될 때면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그런데 저는 아부지가 했던 것처럼, 아부지를 더 살뜰하게 챙길 수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