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이기를 바라는 사람

by 우자까

1. 서른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얼마 전 시집에서 본 구절이 유독 절절하게 와닿았다. 최승자 시인은 「삼십 세」라는 시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썼다. 아침 식탁에서 엄마에게 이 구절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그럼 엄마는 무슨 산송장이냐는 큰 소리와 함께.


그럼에도, 내가 서른이라니. 요즘엔 길 가다 여중생, 여고생들을 보면 마냥 예쁘다. 삐쩍 말랐건, 뚱뚱하건, 여드름으로 얼굴이 울긋불긋 하건 아이들한테서 풍기는 풋풋함이 싱그럽기만 하다. 그 자체로도 빛나는데 여학생들이 두껍게 화장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존재임을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하긴 나도 그땐 몰라서 가방에 파우더와 진분홍 틴트를 챙겨 다니곤 했다.


추석을 맞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촌 언니가 몰래 부탁을 해왔다. 딸이 내년이면 고등학생인데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어서 죽겠다고, 얘기 좀 나눠보라는 부탁이었다. 가끔 보는 조카인지라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모습이 대견했는데, 사춘기라니 한편으로 마음이 쓰였다.


어른들끼리 식사하며 담소를 나눌 때 나는 조카 옆에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말부터 꺼낼까 하다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요즘 애들 화장 너무 진하게 하더라. 화장 일찍부터 하면 피부에도 안 좋으니까 너도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 너네는 그냥 그 자체로도 너무 예쁘거든."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뺀질한 맨얼굴의 조카가 귀엽고 예쁜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려다 어른들 말소리가 시끄러 일어나서 방으로 향했다. 조카가 자기 방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순간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조카의 책상 한쪽 편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양과 종류의 화장품이 빼곡하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2. 새벽 비행이 있던 날이었다. 최소 새벽 3시에는 일어나 비행 준비를 하고 4시 전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새벽 비행 전날에는 잠을 거의 못 잔다. 혹시 제때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내내 선잠을 자거나 잠자리를 설치기 일쑤다. 그러니까 그날도 막 잠들려는 찰나에 요란하게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을 부들거리는 손으로 끄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여..’


좀비처럼 일어나, 부모님이 깨지 않게 조용히 씻고 화장을 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빠뜨린 건 없는지 마지막으로 가방을 살펴보는데 안방에서 알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알람 소리와 거의 동시에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아부지였다. 거실의 환한 형광등 조명 때문에 눈도 미처 다 못 뜨지 못했다. 아부지는 눈을 끔벅거리며 언제 그렇게 준비를 다 했냐고 카디건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 나왔다. “비행 나가는 딸 마중해 줘야지.”


마음이 울컥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니, 그냥 좀 자지. 굳이 알람을 맞춰서 일어날 게 뭐 있어. 내가 애도 아니고..." 아부지를 새벽부터 깨워서 하루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어난 짜증이었다.


대학 졸업 전, 승무원이 되어 비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새벽 비행이 있는 날마다 온 가족이 기상이었다. 부모님은 혹여 아침잠 많은 내가 알람 소리를 미처 못 듣고 비행에 늦을까 봐 걱정이었고, 서두르다 빠트리고 가는 것은 없는지 불안해했다. 새벽 길이 춥고 어두운데 먼 길 나서는 딸의 모습이 괜히 서글퍼 보인다는 소리도 빼먹지 않았다.


이제 내일모레면 서른이고 비행도 6년 차인데, 여전히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서 따라 나오는 아부지가 답답했다. 실은 아부지의 단잠을 깨웠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으리라. 이 마음은 분명 아부지를 생각하는 마음이었음에도 대뜸 화부터 내고 말았다.


나는 아부지를 잘 쳐다보지도 않고 빨리 다시 잠이나 자라고 말한 다음 뒤돌아서 현관문을 열었다. 아부지는 급하게 따라 나오며 일 층까지 내려왔다. 아마도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부지는 나에게 비행 잘 다녀오라는 말을 건네고, 나는 아부지에게 비행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건네는, 그런 인사를. 다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늦었다며 빨리 가겠다고 말하고는 아부지에게서 돌아섰다.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아부지가 한 말이 튕겨 나갔다.


“딸, 잘 다녀와! 항상 안전이 우선이다! 잘 챙겨 먹고..”


뒤돌아보면 아부지가 나를 보고 있으리란 걸 알면서 나는 고집스럽게 끝까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캐리어를 끌고 가버렸다. 안개와 밤이 뒤섞인 습기 찬 새벽 공기가 꿉꿉했다.


3. 새벽 비행을 시작으로 4박 5일간의 무탈한 미국 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는 사전에 신청해 둔 글쓰기 특강이 있었다. 한국에 오니 낮 12시였는데 사무실에서 안전 교육 동영상을 보고 집에 도착하자 오후 3시였다. 특강은 저녁 7~9시로 판교에 있는 경기콘텐츠코리아랩에서 열렸다. 집에서 넉넉잡고 5시에는 출발해야 하니 대충 유니폼을 갈아입고 끼니만 때운 다음 나와야 할 스케줄이었다.

몸에 밴 눅눅한 비행 때를 씻고 나오자 미주 비행 여파로 피로가 몰려왔다. 몸에 열이 오르고 눈꺼풀은 무거운 셔터를 끌어내리듯 자꾸 밀려 내려왔다. 방 한구석에 놓인 폭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이 자꾸 내게 누우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그래도 내가 듣고 싶어 했던 특강이니 가야만 했다. 침대 위로 자빠지기 전에 잡히는 대로 옷부터 입고 집을 나섰다.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를 편의점에서 사 들고 번갈아 마시면서 판교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어 나가는데,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 연달아 두 번이나 읽었다.


‘다릴 뻗고 고갤 젖히고, 그래서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보며 나는 말했다. 형, 지구는 진짜 돌고 있어요. 그러냐? 이렇게 지구가 도는 게 느껴질 땐 말이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가? 그러니까…… 정말 우주에서…… 행성 위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왜 고작 이따위로 사는 걸까, 라고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코치 형이 뭐 좀 마시자, 라며 자릴 일어섰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이 구절만 여러 번 다시 읽어보았다. ‘맞아. 우주에서, 행성 위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지…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어느새 판교역에 도착해 책을 덮었고, 이제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 올라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아 바깥 풍경을 살폈다. 판교에는 처음 가봤는데, 영화 속 기계 문명 도시 같은 세련되고 장엄한 빌딩들을 보자 갑자기 신이 났다.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넥슨코리아, 카카오게임즈 등 으리으리한 빌딩을 지나치는 버스 안에서 판교 테크노밸리 부근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반듯한 빌딩들만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묘하게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이내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하차 버튼을 누르고 시계를 보니 강의 시간 15분 전이었다. 늦을까봐 내리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달렸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높은 빌딩들 사이로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강사는 말했다. 오늘 책 오십 페이지를 읽고 자면 내일의 나는 오십 페이지를 더 읽은 사람이 되고, 오늘 글을 쓰고 자면 내일의 나는 한편의 기록을 더 가진 사람이 된다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그냥 잘 수가 없다고. 무척 피곤했지만 여느 날처럼 비행 후 뻗어 자지 않고 판교까지 와서 글쓰기 강의를 듣는 스스로를 기특히 여기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으쓱해했다.


4. 강의를 다 듣고 집 근처 역에 도착하니 밤 11시였다. 마침 공덕역 이마트 앞에서 다코야키를 팔고 있었다. 강의 듣기 전에 끼니를 대충 때웠던지라 배가 고팠다. 현금 계산만 가능하다는데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문득 오늘 아부지가 밤늦게 들어올 거라는 엄마의 카톡이 생각났다. 혹시나 해서 아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신호음이 가는 동안 비행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아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버릇없는 뒤통수에 대고 말하던 그 모습과 함께 신호음을 따라 마음 한구석이 꿀렁거렸다.


“에구. 한국 들어왔구나?”

“응, 아부지. 오늘 낮에 들어와서 판교에서 강의 하나 듣고 왔어. 아부지 지금 어디야?”

“지금 이마트에서 장 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올 때 우유랑 마늘이랑 이것저것 좀 사 오라 그래서.”


아부지에게 마침 나도 이마트 앞이라며, 아부지 현금은 가지고 있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다코야키가 먹고 싶은데 현금이 없다고 했다. 아부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아빠가 다 사줄게”


전화를 끊고 다코야키를 파는 트럭 앞으로 갔다. 오리지널 맛, 치즈 맛, 매운맛 중 무슨 맛을 할지 고민됐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동그란 모양의 다코야키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입에 쏘옥 넣고 맥주 한 모금 마시면 그만일 것 같았다. 아부지에게 이마트에서 맥주도 좀 사 오라고 할 것을...

계속 그러고 서 있자 다코야키 트럭 사장님이 멀뚱멀뚱하니 다코야키를 쳐다만 보고 사지도 않는 처녀를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멋쩍은 나는 아부지가 나올 이마트 입구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파가 삐죽 튀어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아부지 모습이 보였다(장 좀 봤다 하면 대파 하나는 튀어나와 있어 줘야 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아부지가 입구에서 나오기도 전에 큰소리로 외쳤다. "아부지이이이이이이!" 하고.


아부지는 물론이고 입구로 드나드는 사람들 몇몇이 나를 돌아다봤다. 웬 처자가 저렇게 아빠를 찾나 싶은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부지의 리액션이 우리 모습을 한층 더 남우세스러운 부녀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아부지는 어깨를 뒤로 한껏 재치고는 금방이라도 나를 안을 것 마냥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렇게 두 팔을 벌린 채로 허허허 웃으면서 걸어왔다. 그 모습에 탄력받은 나는 연신 아부지를 외쳐대며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 팔짱을 꼈다.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다코야키를 기다리며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댔다. “이번 비행은 어땠고~, 오늘 강연은 너무 좋았는데~, 판교 분위기가 그래서~..”


아부지는 어이쿠, 어이쿠 감탄사를 적절하게 넣으며 내 수다에 흥을 돋웠다. 그렇게 한 손에는 포장된 다코야키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부지와 팔짱을 낀 채 집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어둑어둑한 길에서 아부지의 옆얼굴을 보았는데 그새 또 많이 늙어 있었다. 나는 더 꼬마같이 아부지 팔을 잡고 늘어지며 종알종알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그럴수록 아부지는 눈가의 주름을 한층 더 짙게 만들며 소리 내 웃었다.


순간, 여기 있었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다 커버린 징그러운 서른 살 처녀였지만 내가 아직 아이이길 바라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자기 앞에서만큼은 아이처럼 행동하길 바라고 그런 모습마저도 흐뭇하고 사랑스럽게 봐줄 사람이 바로 여기 있었다. 새벽 비행을 나가는 길, 졸리다고 더 자고 싶다며 툴툴거려도 그 모습조차 대견하고 장한 마음에 지긋하게 바라볼 눈빛이 여기에 있었다. 영원한 물건도 장소도, 영원한 인간도 없겠지만, 영원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판교의 빌딩들은 휘황찬란했고 다코야키와 이마트의 간판과 집으로 가는 거리의 불빛은 아부지의 흰머리를 한층 더 밝게 비춰주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고로,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더욱 찬란하게, 오래도록 빛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혼자서 반짝일 수 있을까.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시선을 통해, 그 눈빛 속에서 반짝거릴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간 어떤 눈빛과 시선으로 내 부모를 비춰주고 있었을까.
어느 겨울 날, 아부지랑 근사한 카페에 방문했을 때
올 여름, 포항 해수욕장에 위치한 핫플레이스 카페 테라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