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돌아서고 나면

by 우자까

아부지 생일을 맞아 다섯 명이 참치집으로 모였다. 엄마와는 아쉬운 대로 영상통화로 대신했다. 오빠와 오빠 여자친구가 나란히 앉고 맞은편으로는 아부지가 가운데 앉아서 나와 뚱목이가 아부지 양옆으로 앉았다. 접시에는 연한 분홍빛과 선분홍빛의 참치가 번갈아 놓여 있었는데 색이 참 예뻤지만, 날 것을 못 먹는지라 나만 대구탕을 따로 시켰다.


마침 뚱목이가 제주도에서 돌아온 날이라 자연스레 제주도 여행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선크림을 하나도 바르지 않고 하루 종일 우도에서 자전거를 탄 뚱목이는 코가 대취한 사람처럼 빨갰고, 팔이 보기 좋게 익어있었다. 어찌나 빨갛게 익었는지 티셔츠의 경계가 뚜렷이 보였다. 참치집으로 오기 전 나는 냉장고에 넣어 둔 알로에를 꺼내 뚱목이 얼굴에 처바르며 어떻게 아무도 선크림 바를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랐다. 제주도에 같이 다녀온 다른 친구 세 명의 얼굴도 볼만할 터였다.


오빠와 오빠 여자친구가 검붉게 탄 뚱목이 얼굴을 지적하며 사내놈들끼리 재밌었나 보다며 놀렸다. 뚱목이는 듣기에도 같잖지만 나름 귀여운 모험담을 늘어놓았다. 뚱목이 얘기를 듣던 오빠의 여자친구인 쏘 언니가 우리 오빠를 흘겨보며 말했다. "대체 왜 그렇게 위험하게 놀려고 할까" 나와 아부지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우리 오빠도 친구들이랑 놀러만 갔다 하면 다치거나, 본인이라도 다치지 않으면 친구가 다쳐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제주도에 내려간 첫날 해안 도로에서 스쿠터를 타고 커브길을 돌다 엎어져 쇄골이 나갔다. 더 웃긴 건 친구들이 렌터카를 빌렸는데, 오빠 혼자서 해안 도로에서는 스쿠터를 타는 게 낭만이라며 굳이 스쿠터로 달렸다. 커브길에서 속도 조절을 잘 못해 그대로 고꾸라지며 머리를 부딪힌 오빠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얘 왜 안 보이냐?" 친구들은 백미러로 보이던 오빠가 뒤따라오지 않자 사고가 났음을 직감해 차를 돌렸다. 아득하게 멀리서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오빠는 침침한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했다. "죽었나?"


그러고도 이 사내들은 응급실에 가 응급처치를 한 뒤 붕대를 칭칭 동여맨 채 제주도에서 2박 3일을 마저 놀고 부산까지 들렸다가 집으로 귀가했다. 그래도 부모에겐 걱정할까 싶어 계단에서 엎어져 다쳤다는 어설픈 거짓말을 해주었다.

그 후 놀러 간 스키장에서는 오빠 친구가 보드를 타다 쇄골이 나갔고, 또 그 후 놀러 간 펜션에서는 또 다른 친구 코가 부러졌다. 부러졌다기보다는 코가 움푹 패었다고 하는데, 족구를 하던 중 헤딩에 헤딩으로 맞서던 친구가 결국 뒤통수에 얼굴을 정면으로 박았고 빡! 소리와 함께 코가 사라졌다 한다. 콧구멍만 남은 얼굴을 보고 오빠를 비롯한 친구들이 헉, 하고 놀라자 오히려 코가 사라진 친구는 뭔지도 모르고 무서워하며 왜? 왜?라고 되물었다고.


오빠와 뚱목이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껄껄 웃었고, 결국 "그래도 재밌으니까"를 결론으로 맺었다. 나랑 쏘 언니는 옆에서 듣다가 어이가 없어 두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아부지는 그런 우리 모두를 번갈아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먹을수록 느끼한 참치 때문인지 소주 세 병이 빠르게 떨어졌을 때쯤, 알밥과 매운탕이 나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일찍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부지 생일인데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시원하게 씻은 다음 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딸의 피곤한 기색을 눈치챈 아부지는 식사와 술이 거진 바닥을 보이자 이만 일어서자고 먼저 말했다.


차를 가지고 온 오빠와 쏘 언니를 먼저 보내고, 나와 뚱목이는 아부지와 함께 근처 전철역까지 걸었다. 우리는 바로 집 근처라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들어갈 요량이었다. 아부지는 지하철 계단 입구 앞에서 우리 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뚱목이가 "아유, 아버님이 먼저 들어가셔야죠"하며 고집스럽게 말하자 아부지는 못 이긴 듯 돌아섰다. "그래, 그럼 나 먼저 가네" 아부지가 돌아서고 계단을 한 칸 두 칸 내려가자 뚱목이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도 이제 그만 가자"


나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뚱목이가 왜냐고 물어보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아부지를 보며 말했다. "우리 아빠, 뒤돌아 볼 거야" 아부지는 내 말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뒤돌아보았다. 뚱목이가 신기해하며 계단 밑에 있는 아부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 진짜 돌아보셨네" 아부지도 덩달아 손을 같이 흔들며 왜 안 가냐고,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던 아부지를 우리는 끝까지 바라보았다. 계단을 다 내려간 아부지가 마지막으로 뒤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고, 여전히 서 있는 우리를 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뚱목이가 아버님이 원래 그렇게 돌아보시느냐고 물었다. 나는 뜸 들이다 말했다.


"아니, 내가 아빠랑 헤어지고 돌아보면 아빠가 항상 나를 보고 서 있었거든. 왠지 오늘은 아빠가 뒤돌아볼 것 같았어. 그런데 아빠가 뒤돌았을 때, 내가 없으면.. 혹시 서운해할까 봐."


뚱목이는 혼잣말인 것처럼 그랬구나, 역시 아버님이라고 말하며 정면을 보고 걸었다. 내심 나는 오늘만큼은 아부지가 뒤돌았을 때 우리가 서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아부지가 계단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텅 빈 하늘만이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내가 이렇게 아부지 뒤에 있어야겠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땐, 꼭 뒤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나는 뒤돌았는데 휘적휘적 무심히 갈 길만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또 그렇게 서운한 적 없었나요.
저는 아부지 덕분에 헤어지고 나서 괜히 한 번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상대방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뒷모습을 한번 더 보게 되면 만남의 또 다른 느낌을 더해주더라고요. 쌩하니 뒤돌아서 가기 전에 한 번쯤 내가 방금까지 마주하던 사람의 뒷모습에 시선을 머물러 보세요. 그날의 만남이 마음속에 더욱 깊게 자리하는 느낌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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