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이라 아침 9시까지 회사로 가면 되었다. 아침마다 시간에 쫓기는 형편인 나는 당연히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나갔다. 회사 건물 1층 김밥 집 앞에서 같이 비행하는 친한 후배 승무원에게 전화를 했다. 어떤 김밥을 먹고 싶은지 묻기 위해서였다. 후배는 자기가 이미 동네 맛집 가게에서 김밥 두 줄을 샀으니 사 오지 말라고 했다. 고맙다 말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편의점에 들러 커피나 샀다. 비행에서 서비스를 마치고 후배는 갤리에서 김밥 두 줄을 펼쳤다. "사무장님, 야채김밥이랑 참치김밥이에요."
우리는 사이좋게 야채김밥과 참치김밥을 번갈아 먹었다. 먹었다기보다 꾸역꾸역 입으로 넣었다. 국내선 왕복 두 번 비행으로 우리에게는 아직 세 개의 비행이 더 남아있었다. 뭐라도 먹어야 했다. 하루 총 여덟 번의 이착륙으로 달라지는 기압차에 내 위장은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했다. 매일같이 하는 비행이지만 비행할 때마다 속은 더부룩했다. 기내에서는 소화가 되지 않아 까스활명수와 탄산수를 입에 달고 살지만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빈속이면 울렁거림이 심했기 때문이다. 김밥 한 줄로 내 위장이 오늘도 잘 견뎌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김밥에서 단무지를 슬그머니 빼고 먹었다. 단무지 빼는 모습을 본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사무장님, 단무지 안 드세요? 매번 그렇게 빼서 먹기 귀찮겠어요!" 나는 겸연쩍어 별로 귀찮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귀찮았다. 한쪽으로 볼 품 없이 내쳐진 단무지들을 보는데 귀찮음을 덜어주던 엄마표 단무지 없는 김밥이 떠올랐다.
엄마가 싸준 김밥에는 단무지가 없었다. 당근과 시금치, 우엉, 맛살, 햄, 계란까지 일반적인 김밥에 들어갈만한 재료는 다 들어있었다. 딱 하나, 단무지만 빼고. 단무지 없는 김밥, 앙꼬 없는 찐빵이 무슨 맛이고 재미겠냐고 흔히들 말하지만 나는 엄마가 싸준 단무지 없는 김밥을 좋아했다. 소풍날이면 엄마표 김밥은 친구들의 관심과 놀림을 동시에 받았지만 말이다.
중학생 시절에는 해마다 5월이면 학교에서 소풍을 갔다. 송파구의 명소 올림픽 공원이 학교 지척에 있어 매번 걸어서 공원으로 향했다.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주어진 시간 동안 글을 쓰거나 그림 한 장을 그리면 되었다. 나와 어울리는 친구들은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아래 나무 그늘을 찾아 옹기종기 앉았다. 우리는 돗자리도 펴지 않은 잔디 위에 털퍼덕 엉덩이부터 깔고 앉아 도시락통부터 주섬주섬 꺼냈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무시로 배가 고플 때였다. 백일장은 뒷전이기 마련이었다.
친구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면 제각각 모양의 김밥들이 한눈에 보였다. 김발로 똑같이 동그랗게 말았을 텐데 굵기부터 천지차이였다. 밥알로 싸여 가운데 자리한 재료들은 어떻고. 햄이 두 줄씩 들어간 김밥, 유독 두툼한 맛살이 자리한 김밥, 멸치가 잔뜩인 김밥.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를 꽉 차게 넣어서 김밥을 말았다. 모두 먹음직해 보였다. 우리는 김밥을 한두 개씩 나누어 먹었다. 그러다 한 명이 "우와, 김밥에 소고기까지 들어있네?"라고 말하면 소고기 김밥의 주인공인 아이가 어깨를 슬쩍 으쓱해 보였다. 그러다 또 다른 한 명이 "뭐야, 이 김밥엔 단무지가 없어!"라고 외치면 나는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애들은 깔깔 웃으며 너네 엄마가 단무지를 까먹었다고 놀려댔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내가 단무지를 싫어해서 그렇다고 빽하니 소리를 지르면 친구들은 뻥치지 말라고 더 크게 웃어젖혔다. 그 웃음 속에서 단무지 없는 김밥을 입으로 가져가 우물우물 씹었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없어 심심하면서도 부드러운 김밥이 입안에서 뭉그러졌다. 단무지 없는 김밥의 밋밋한 맛이 좋았다.
김밥을 말끔히 해치운 다음 수다 떨고 뛰어놀다가 점심때가 되면 다시 배가 고팠다. 그러면 공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른 반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김밥 한 개만 달라고 입을 쩍 벌리며 김밥 동냥을 했다. 나는 김밥에서 단무지만 쏙 빼고 먹었다. 친구들 김밥을 집어먹을 때마다 집집마다 김밥 맛이 다 다른게 신기했다. 그러다 집합 장소에 모이기 10분 전이 되면 흰 도화지 위로 휘갈기듯 쓰거나 그렸다. 장려상도 받지 못할 작품을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밥풀 하나 남아있지 않은 빈 도시락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엄마는 단무지가 들어있는 김밥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서 빈 도시락통을 건네받으며 김밥은 맛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싸준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쟤는 단무지 없는 김밥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엄마는 매년 내가 소풍 갈 때마다 단무지 뺀 김밥을 말았다. 내게 단무지는 노오란 형광빛부터 거부감이 들게 하는 음식이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류승룡과 임수정도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저는 단무지가 정말 싫어요. 아니 무슨 음식이 형광색일 수가 있죠?"
"게맛살 껍질에 붙은 형광 핑크 있잖아요. 그것도 가식적인 색깔이에요. 너무 맛있어 보이려고 애쓰는 색깔이야."
오, 굳이 단무지를 빼서 먹는다고 타박 받던 내게는 참으로 반가운 장면이었다. 나는 단무지의 형광색도 싫어하지만 새큼새큼한 맛은 더 못 견뎌한다. 그래서 짜장면 먹을 때도 단무지가 아닌 김치를 꺼내 먹는다. 엄마는 오로지 그렇게 까탈스러운 나를 위해 단무지 없는 김밥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엄마는 고두밥보다 살짝 진밥으로 김밥을 싸야 입안에서 뭉그러지는 맛이 좋다며 진밥을 했다. 부드러운 진밥에 꽃소금과 참기름을 한 큰 술 넣어 살살 비볐다. 고루 비벼진 밥은 손가락으로 조금만 집어먹어도 식욕을 돋우었다. 시금치는 뿌리 밑동 부분만 썰어 덩어리째로 깨끗이 씻어 썼다. 시금치에는 소금을 뿌려 식용유로 살짝 볶았고, 계란에는 소금과 황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 다음 센 불로 지단을 만들었다. 옆으로는 단무지가 안 들어가는 대신 우엉과 길고 얇게 썬 당근이 쌓여있었다.
엄마가 간이 알맞게 된 진밥을 김 위에 올려 얇게 폈다. 다른 재료들도 하나씩 가지런히 밥 위에 올려놓은 다음 김발을 이용해 재료들 사이에 틈이 없게끔 꾹꾹 눌러주며 김밥을 쌌다. 정갈하게 싸인 김밥은 길쭉하고 늘씬했다. 이제 마지막 역점이 남았다. 엄마는 완성된 김밥 위에 참기름을 윤기나게 발라주고 고소한 깨를 여러 번 뿌렸다. 그리고 나서야 전날 밤에 정성 들여 간 식칼로 김밥을 썰었다. 나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밥이 썰려 나오기 무섭게 바로 집어먹었다. 참기름의 고소함과 짭짜름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차례로 다가왔다. 단무지는 없지만 우엉과 당근 덕분에 아삭한 맛도 나름 살아있었다. 나는 김밥 하나를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다른 하나를 입으로 가져다 넣었다. 입안 가득 넣은 김밥으로 양볼이 부풀어 둘리 같아진 나를 보는 엄마의 얼굴에 따뜻한 빛이 일렁였다. 그런 순간에는 포근하지만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나를 온통 뒤덮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며 엄마가 더 이상 김밥을 싸주지 않는 지금은 밖에서 김밥을 사 먹는다. 바깥에서 사 먹는 김밥에는 당연히 단무지가 들어있다. 미리 포장돼 있는 걸 사거나 주문할 때 단무지 빼달란 소리를 까먹기도 한다. 다 먹고 나면 한쪽에는 네모나게 각진 단무지가 소복이 쌓여있다. 단무지가 싫어서 빼더라도 이미 단무지가 들어있던 김밥의 밥알은 단무지 물기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그 밥알에서 단무지의 새큼한 맛이 느껴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단무지의 흔적을 느끼며 목구멍으로 김밥을 넘긴다.
왕복 비행을 하나 마치고 다음 왕복 비행까지는 한 시간 정도 텀이 있었다. 어느덧 오후 1시를 훌쩍 지나 2시가 가까웠고, 우리는 다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려 김포공항 국내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편의점에 간 후배 승무원들은 삶은 달걀이나 바나나를 집었다. 나는 뭘 먹을까 고심하다가 결국 또 김밥을 집어 들었다.
요즘에는 김밥 한 줄도 각양각색이다. 삼각김밥, 사각김밥, 꼬마김밥, 계란말이 김밥으로 종류도 다양하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무궁무진하다. 불오뎅김밥, 소고기김밥, 크래미와사비김밥, 체다치즈김밥, 멸치견과류김밥, 참치마요김밥, 멸추김밥, 스팸김밥, 새우롤김밥, 돈까스롤김밥, 소고기주먹밥까지. 이외에도 너무 많지만 그냥 김이랑 밥 사이에 뭐라도 넣으면 무슨 무슨 김밥이 되었다. 공항 편의점에도 다양한 김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참치마요김밥을 선택했다. 아침에 같이 김밥을 먹은 후배 승무원이 사무장님은 또 김밥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치마요김밥은 오빠 덕분에 맛을 들였다.
다섯 살 터울인 오빠가 군대에 있을 때 엄마와 면회를 갔다. 엄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부랴부랴 도시락을 쌌다. 출발하기 직전이 돼서야 일어난 내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면 5첩 반상 도시락에 김밥과 유부초밥, 떡갈비가 들어있었다. 이번 김밥에는 단무지가 있었고 참치도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오빠가 참치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빠는 맨밥에 참치캔만 가지고도 밥을 곧잘 먹었다. 참치김밥을 두 개씩 입에 넣는 오빠 앞에서 나는 김밥 옆구리가 터질까 봐 단무지를 긁어내듯이 살살 빼고 먹었다. 기름진 듯하지만 씹을수록 담백한 참치가 고소했다. 참치에 맛을 들인 나는 종종 그냥 김밥보다 참치김밥을 단무지 빼고 주문해서 먹었다. 이번에는 이미 포장되어 나온 편의점 김밥이기에 일일이 단무지를 빼서 먹었다.
어제처럼 아침이나 새벽 비행을 할 때면 김밥을 자주 사 간다. 같이 비행하는 승무원에게도 밥은 먹고 왔냐고 물어보며 입안으로 김밥을 하나 쏙 넣어준다. 승무원이 되기 전에 취직 준비로 도서관과 학원을 오갈 때에도 가방에는 김밥 한 줄이 들어있었다. 시간에 쫓겨서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먹기보다는 김밥 한 줄로 대충 때운 것이다. 간단하게 먹기 좋은 김밥은 바쁜 사람들 가방 속에 자리 잡고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김밥은 그저 입에 넣고 씹어 삼키기 좋은 끼니로 작용할 뿐, 음식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았다. 분명 김밥은 소풍 때나 군대에 면회 가는 날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잘 차려진 음식이었는데 말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여유도 없어 김밥이나 한 줄씩 사 먹는 사람들에게는 잘 차린 음식 대신 끼니로 전락한 김밥이었다.
그럼에도 김밥은 제 몸 안으로 재료들을 모두 끌어안아 갖춰야 할 영양소까지 고루 챙긴다. 컵라면 하나를 먹을 때에도 괜히 김밥 한 줄까지 사서 먹어야 속이 더 든든해진 기분이 든다. 오늘도 김밥은 많은 노동자의 허한 속을 간편하게 채워주고 있을 터다. 참치김밥을 다 먹은 나도 양치를 하고 다음 비행을 준비했다.
쏟아지듯 기내로 들어오는 승객들을 웃으며 맞이했다. 저녁 9시가 지나서야 비행을 마쳤다. 밤하늘이 깜깜했고 다리는 퉁퉁 부어 구두를 신은 발가락이 아팠다. 캐리어를 돌돌돌 끌며 집으로 향하는데 또 배가 고팠다. 집에 가서 뭘 해 먹을지, 냉장고에는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의 지겨움이 몰려왔다. 다리도 아프고 귀찮은데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었다. 엄마한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엄마는 날마다 꽃 피는 거 맞이하느라고 극락세계를 거닐고 있다. 막내 이모가 왜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삼부리만의 천당이여."
삼부리는 엄마가 사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있는 리다. 엄마는 메시지와 함께 꽃 사진 여덟 장을 보내왔다. 가정에서 독립하고 싶다던 엄마는 딸을 시집보내고 시골로 내려가 유유자적해 보였다. 가끔 전화하면 직접 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다던가, 잘 익은 물김치에 소면을 넣어 동치미국수를 해먹는다고 했다. 밥때마다 딸아들을 위해 요리하던 엄마는 이제 끼니 걱정 없이 소박하게 먹었다. 나는 엄마에게 꽃이 참 예쁘다고 답장을 보냈다. 왕복 비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고도 덧붙였다.
씻고 나와서 남편과 밤늦게 치킨을 시켜 먹었다. 다음 비행은 모레였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만큼 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을 요량으로 잠들기 전에 요리 레시피 어플을 뒤졌다. 찌개나 볶음밥 레시피를 훑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빼거나 덧붙여 생각했다. 차돌박이 된장찌개 레시피는 차돌박이 빼고 모시조개를 넣던가, 감자 볶음밥에는 새우도 넣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음식에서 딸이 좋아하는 재료를 생각하고 기어이 넣거나 빼서 만든 요리가 다 그랬다. '돼지고기'가 담뿍 들어간 김치찌개, '호박'과 함께 푹 찐 갈비찜, '오징어'가 김치보다 많아 보이는 김치전, '들깨가루'로 고소한 풍미를 더하는 미역국. 그런 요리는 배를 채우고 마는 끼니가 아니었다. 그 시절 단무지 없는 김밥은 비행하다 먹는 김밥처럼 급히 속을 채우는 끼니가 아니었다. 심심하면서도 부드러운 엄마표 단무지 없는 김밥은 유년시절 내 입안과 마음까지 그득히 채웠다. 엄마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 나는 엄마 밑에서 받아먹은 그때 그 요리들로 잔병치레 없이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빵이나 샌드위치 또는 단무지가 들어 있는 김밥 같은 끼니들로 생활과 비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마저도 못 챙겨 먹을 때가 허다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