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일지부터 시작해 일상 글을 쓴지도 꽤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에만 쓰다가 브런치로 옮겨왔고, 이곳에선 독자들과 더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계속 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장강명은 『책, 이게 뭐라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읽는가? 왜 쓰는가? 개인적인 답변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자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수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깨어 있으면 졸려서 버틸 수가 없다. 아무리 즐거운 나날이 이어져도 글을 읽거나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나는 허무해진다."
정말 작가다운, 멋있어 보이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작가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쓴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그를 그저 경이롭게 바라만 보았다. 나도 뭔가 있어 보이게 말하고 싶으나 그렇게까지는 못하겠고, 그냥 글 하나를 쓰고 나면 속이 후련해져서 쓴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음? 그럼 쓰지 않으면 속이 후련하지 않고 답답하니 나도 쓰지 않고선 못 버틴다는 소리인가? 오, 나도 그렇다면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쓴다고 말하는 작가!!!이고 싶은데 사실 나는 삼사 주 정도는 글 한 꼭지를 쓰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잘만 시간을 축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비행하는 시절의 일을 잊고 싶지 않아 쓰기 시작했다. 쓰고 나면 그날의 비행이 차분하게 정리가 되었고, 유독 힘들었던 비행도 쓰는 과정에서 그때 그 상황과 순간을 돌아보며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다. 비행 일지를 쓰는 시간 자체가 내겐 다음 비행을 나가기까지 심신을 다스리고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특별했던 날의 일은 쓰지 않기라도 하면 까먹기 전에 빨리 써야 한다는 조바심까지 들었다.
아부지가 글을 쓰기 바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나이 63세에 지금까지 지나온 인생, 한번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지 않을까. 그 복잡다단한 속내를 글로 풀어내면 어떨까.
몇 번이고 아부지에게 글쓰기를 권했지만, 쓴다는 행위 자체가 아직은 부담이신 것 같다. 아부지는 글을 써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한 발 뺐고, 쓰려고 하니 어휘력이 부족하다며 두 발 뺐다. 거기다 최근에 이런저런 얽혀있는 일 때문에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고 세 발 뺐다.
"아, 그러니까 글을 쓰면 그 머릿속 혼잡스러운 것들이 정리가 된다니까!?"
"복잡해서 안 써진대도 그러네..."
"그 복잡함을 글로 써보시라고요~"
몇 달째 이런 대화만 오갔다. 그런데 얼마 전 통화에서 아부지가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책이냐 물으니 채사장의 『열한 계단』이란다. 일전에 지나가는 말로 추천한 책이었다. 『열한 계단』도 좋은 책이지만 아부지가 써보길 바라는 글은 수필이었기에 아부지 또래 작가의 수필 책을 읽히고 싶었다.
사무실 근무를 하는 날, 칼퇴를 하고 아부지를 만났다. 삼계탕을 먹고 서점에 가서 『임계장 이야기』와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책을 골랐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저자는 60세에 공기업을 은퇴한 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는 고단함을 써 주목을 받았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의 저자는 70세 할머니로 책 뒤표지에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두 책을 아부지 손에 쥐여주고 더 보고 싶은 책은 없는지 둘러보고 있으라 했다. 서서 건성으로 책을 들척이던 아부지였는데 내가 문학 코너와 팬시점을 살펴보고 화장실에 다녀올 때 보니 자리를 잡고 앉아 고개는 푹 숙인 채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를 읽고 있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부지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아부지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웅크리고 있었을까.
아부지는 지금, 괜찮은가.
아부지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내가 가장 가슴 절절하게 읽을 독자일 테지만, 책을 읽고 용기를 얻어 아부지도 아부지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 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슬쩍 아부지 옆으로 가서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처럼 『진짜 멋진 할아버지가 되어버렸지 뭐야』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아부지는 진짜 멋진 아부지임을 누구보다 내가 인정하니까.
언젠가 서점에서 아부지의 책을 보게 되기를! 그 이전에 내 책부터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