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꿈에 대통령이 나왔다.
꿈에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살면서 연예인 꿈 한번 못 꿔봤던 내 꿈에 그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대통령 꿈을 꾸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마침 깨고 보니 토요일이었다. 그렇다. 로또를 사기로 했다. 묘하게도 얼마 전 대통령 꿈을 꾸고 1등에 당첨되었다는 후기도 인터넷에서 보았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부풀었다. 내 손에 로또 종이도 없지만, 돈은 벌써 들어온 듯했다.
'요즘 로또 1등 당첨액이 얼마더라?'
'우와 그 돈이면 내가 몇 년을 일해서 모아야 하는 거지? 이번 생에는 모을 수 있는 돈인가?'
'가족에게는 어떻게 말하지? 얼마를 드리지?'
'뭐부터 사지?'
'아무래도 집은 한 채 있어야겠지?'
'어디에? 그 집을 전세로 주고 나는 또 전세로 살면 되겠지?'
'요즘 세금이 올랐다던데 세금 낼 돈은 남겨야겠지?'
'차는? 아냐 집이랑 차를 동시에 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건 나중에'
'당장 필요한 물건은 별로 없으니 통장에 넣어야겠다.'
내 가슴은 계속 부풀어 올랐다. 부푼 마음에 토요일 오전에 하는 루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항상 꼼꼼히 하는 집 청소를 대충 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정리하고 먼지도 대충 훑었다. 로또 1등인데 청소가 대수냐. 그래도 바뀐 통장 잔액에도 일상은 유지해야 하니 억지로 했다.
싱숭생숭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로또를 사러 나갔다. 비장하기가 반지원정대 저리 가라였다. 밖은 새가 부리로 구름을 톡 하고 건드리면 바로 물을 뿌릴 것 같았다. 로또 사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역시 금방 비가 쏟아졌다. 엄청난 비였다. 로또를 사러 가는 길이 평탄하지만 않을 것 같아 우산을 챙겼지만, 우산으로 버거웠다. 시야가 빗물로 가렸고 길에는 금세 물길이 생겼다. 신발은 당연하고 종아리와 허벅지, 반바지 밑단까지 빗물로 젖었다. 길을 가던 모든 사람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을 피했다.
나는 신이 나서 홀로 비를 뚫고 나아갔다. 큰 비는 아주 좋은 징조다. 큰돈과 복을 가지러 가는데 이런 시련은 당연하고 반가웠다. 비가 내릴수록 당첨 확률은 높아지는 듯했다.
사실 로또 판매점을 지나면서 항상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한심하게 여겼다. 고등학생 때 확률을 배우면서 수학 선생님의 말씀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확률상 로또 당첨 확률은 0에 수렴된다.’ 선생님의 말씀은 곧 진리였던 시절이라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황하고 지성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꿈에 대통령도 나왔고 사러 가는 길을 적당한 시련이 방해했기 때문이다. 큰 맘먹고 10게임을 샀다. 로또까지 손에 들어왔으니 모든 준비가 끝났고, 내 가슴은 날아갈 듯이 부풀었다.
야속하게 저녁 약속이 있었다. 집 근처 식당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자꾸 시계에 눈이 갔다. ‘결과 발표 시간이 언제더라 8시였나 9시였나’ 시간이 되어도 친구 앞에서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기쁜 티를 내면 친구가 많이 부러워할 테고 나는 미안하니 말이다. 머리로 딴생각을 하니 약속의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급하게 집에 왔던 것만 기억난다.
집에 와 떨리는 마음으로 당첨 번호만 슬쩍 보았다. 차마 한눈에 담을 용기가 없어 첫 번호 하나만 보았다.
13
음 내 로또에 이 번호가 있었던가? 모두 자동으로 하고 번호를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
다음으로 당첨 판매점을 확인했다.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스크롤을 내리는데 심장이 펑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시흥시 정왕동 00000’
'됐다!!! 역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1등 판매점에 시흥시 정왕동이 있었다. 지체할 겨를 없이 바로 QR을 찍었다. 신중하게 찍고 확인하고 또 다음 것을 신중하게 확인했다. 날아갈 듯이 부풀었던 내 가슴이 땅바닥으로 추락하는데 한 장당 5초 총 10초면 충분했다.
내 로또는 당첨 로또가 아니었다. 다시 보니 당첨 판매점도 내가 산 곳이 아닌 한 끗 빗겨 난 다른 곳이었다. 크게 부푼 가슴에 바람이 빠지니 쪼글쪼글해졌다. 한나절 동안 내 것이었던 돈과 집과 차를 뺏겼다. 로또가 돈이 아닌 종이로 끝나니 불행했다.
허탈한 마음에 앉아서 가만히 구겨진 로또를 들여다보니 웃겼다. 원래부터 없던 물건을 뺏긴 기분이라니... 원래 내 것이 아닌 물건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웃겼다. 그 감정은 욕심인지 기대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많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웃어넘겼다. 한나절 동안의 행복과 그 뒤 찾아온 불행 중 선택하자면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 꿈을 꾸고 큰 기대, 적당한 실망과 괜찮은 행복을 얻었고 일주일 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먼저 말 그대로 로또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토요일 아침에 습관적으로 들어간 브런치 통계가 폭발하고 있었다. 0이 4개 찍혀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남아 있던 잠을 확 깨고 정신 차려보니 다음 메인에 이 글이 올라가 많은 사람이 클릭을 한 것 같다. 토요일이라는 시간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의식하지 않고 썼던 제목에서 시쳇말로 어그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그 토요일 동안 조회수는 계속 올라갔고 끝내는 5만이 넘었다. 로또 1등의 어마어마한 숫자는 아니지만 이 조회수는 훨씬 큰 가치가 있었다.
두 번째 일은 그날 내가 조금은 귀찮아했던 그 약속 친구에게서 왔다. 약속 후 그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 하다 대통령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더니 자신은 대통령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대박!!! 그 유명했고 귀했던 그 시계!! 그 시계가 친구에게 있었다. 결국 내 손목에 걸칠 수 있었고 대통령은 꿈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 손목까지 와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