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그 친구가 결혼한다고 한다.
청첩장을 건네면서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인다. 쑥스러워하는 것이 내가 알던 친구 같지 않다. 몇 년을 소중히 만나 결실을 이룬다고 한다. 청첩장을 건네는 손은 쑥스러워했지만, 표정은 편안하고 굳셌다. 사실 결혼과 거리가 먼 친구였다. 어렸을 때 종종 비혼에 대해 이야기했었고 남들은 다 사회로 나가는 시기에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다른 도전을 했다. 도전이 성공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다시 원래 길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그 친구와 결혼을 연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본 가장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깊게 할 사람이었다. 사랑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린 시절 만났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이제 막 학생 티를 벗어난 나는 아직 풋사과 같은 초록색 철부지였지만 그 친구는 벌써 빨간색이었다. 나는 좁은 세상만 보고 그 세상이 다인 줄 알았지만, 그 친구는 훨씬 넓은 세상을 그것도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같은 나이에 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나와 많이 달랐다.
자기 고집이 있고 주관이 뚜렷한 친구다. 그 친구의 고집은 남을 억지로 구부려 자기 쪽으로 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한 옳은 일, 삶의 목표가 있다면 주변의 한계와 제약에 굴하지 않는 고집이다. 친구는 도전했고 실천에 옮겼다. 나는 겁이 많아서 나 있는 길을 갔지만 그 친구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 친구의 깊음은 새로운 길을 가면서 빛을 발했다. 분명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편한 길로 순탄히 가고 있었고 자신은 결과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불안이 없었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친구는 불안을 잘 다스렸다. 불안을 주변에 전하지 않았다. 의연하게 주변 사람을 대했고 나 역시 그의 의연함에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 원래 출발점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역시 깊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와 새로운 길을 찾았다. 자신이 생각한 목표에 후회 없이 노력했고 좌절하지 않았다.
배려가 깊은 친구다. 상대방을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마음의 편안을 위한 가짜 배려가 많다. 이 친구의 배려는 그렇지 않다.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한 선을 지킨다. 자신의 선의가 상대를 상처 주진 않는지 고민한다. 자신의 입장보다는 상대방의 상황을 더욱 고민한다. 높은 수준의 배려다.
이런 친구가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럴 수 있다.’다.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에게 내 억울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가만히 듣던 그 친구는 특별한 반응이나 조언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억울한 나도 억울하게 만든 사람과 상황도 모두 ‘다 그럴 수 있다’였다. 그 친구다운 말이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넓고 깊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뒤로 마음이 동요하거나 감정이 위아래로 출렁거릴 때 그 말을 되뇐다. ‘그럴 수 있다.‘
황희 정승인지 동해인지 모를 깊은 친구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덩달아 나도 설렌다. 앞으로 그 친구가 어떻게 살아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