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사전에 없는 말들이 더 많습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어쩌면,
‘틀려도 괜찮아지는 연습’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외우고,
문장을 조합하는 데 집중하던 시간에서
점점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는 과정이었지요.
어설프게 말을 건 적이 있어요.
발음도 부정확했고, 문법도 엉망이었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웃으며 대답해 줬어요.
“괜찮아요, 충분히 전해졌어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것이 풀렸는지 모릅니다.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을 전하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문법을 바르게 고르기 위해 참는 숨만큼,
그 사이 흘러가는
시간은 종종 어떤 경험이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 못한 말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게 돼요.
그렇지만 문법이 틀려도 괜찮다는 용기,
내 마음을 우선해 뱉는 한마디가
누군가를 웃게 하고, 나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말을 배우는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서 아닐까요.
서툰 말 한마디에도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전달된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처음으로 외국어로 농담을 한 날도 기억나요.
상대가 웃었고, 저도 웃었어요.
그 순간 문법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 웃음이,
제가 그 언어로 처음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거든요.
표현을 배우면 감정도 자라납니다.
그 언어로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단어를 아는 것보다,
그 단어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살면서 배웠습니다.
틀린 말도 때로는
더 정확하게 마음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고마워요’를 ‘수고했어요’로 잘못 말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는
친구의 말처럼요.
언어에는 정확함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기다림과 이해입니다.
문법을 지키는 것보다
마음을 지키는 말이 더 따뜻하다는 걸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전에는 없지만,
삶에는 꼭 필요한 말들이 있습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말해도 돼요.”
“틀려도 알아들었어요.”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저는
한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안의 다정함을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다정함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갑니다.
언어를 배우고, 또 가르쳐보니 깨달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뚝심이라는 걸요.
틀려도 끝까지 전하려는 용기.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꾸준함이
언어를 익히는 데 가장 중요한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삶에도 그대로 닿아 있습니다.
결국은 마음이 전부이기에,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언어라는 걸,
저는 언어를 배우며, 그리고 살아내며 배웠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문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통해 서로를 이해합니다.
그러니 때로는 틀려도 괜찮습니다.
그 말이 당신의 마음을 담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통하는 말이니까요.
말이 트이면, 마음도 열리고
삶도 그만큼 조금 더 나아집니다.
언어는 결국,
틀리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 위한 도구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