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찾은 위로
말을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을 듣고, 이해하고, 또 그것을
내 입에서 다시 내뱉기까지의
긴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단어를 조합하고 문장을
만드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그 언어 속에 담긴 문화와
정서를 내 몸과 마음으로
흡수해 ‘사람 자체’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때로는 이렇게도 어렵고,
또 때로는 이렇게도 느리고
외로운 시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어쩌면 너무 빨리
그 ‘혼자만의 시간’을 알아버린
아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새롭게 마주한 미국이라는 낯선 세상 속에서,
말이 서툴고 부족한 아이는
자연스레 얌전하고 말이 없는
존재로 비쳤습니다.
웃음기 많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의
이면에는 끝없이 내면을 관찰하고
세상을 배우려 애쓰던 시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단순히
‘말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치열한 시간들이었고,
그 모든 순간에 저는 언어를 삼키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문장과 단어들이
머릿속에 스며들기까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저는 혼자였고,
세상과 떨어져 있다는 공허함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 준 것은 책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한국에서 제게 책을 보내주셨고,
그 책들은 저에게 따뜻한 위로이자
언어로 가득한 작은 세계였습니다.
익숙한 한국어가 쏟아져 나오는
그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낯선 언어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미국 생활의
헛헛함과 공허함을 채워준 것도
결국 ‘언어’였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더욱 깊게 깨닫습니다.
외국어를 익히면서 느낀
이질감과 어려움은,
오히려 모국어로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며 채워나갔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나 자신과도 싸워야 했고,
동시에 세상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야 했습니다.
그 과정은 때로는 고독했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겹겹이 쌓인 계절처럼,
그 시간들은 끝없이
이어진 혼자 걷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고독한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언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법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도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아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비로소 나는 세상과 말을 트고 삶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트인다는 것은
단순히 말문이 열리는 일이 아닙니다.
그 언어 안에 담긴 정서와 문화를 느끼고,
내가 속한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가는 길은 결코 짧지 않고,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나를 발견하고,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빨리 찾아왔던 아이는
그렇게 언어와 시간을 함께 걸으며
조금씩 세상을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갔습니다.
오늘도 그때의 긴 시간들을 떠올리며,
언어가 내게 준 선물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