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보다 먼저였던 것은 용기였다

말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는 말처럼

by 이서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익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늘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간절합니다.

틀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결국 말을 꺼내게 됩니다.

그 용기가 쌓여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곧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도구가 됩니다.



Episode 1 – 내 발음 앞에서


초등학생 시절,

조기유학으로

낯선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이었습니다.

영어라곤 ‘A-B-C’ 겨우 외우고 떠난 유학길.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ESL 수업을 하루 두 시간씩 들었고,

선생님은 이름도 따뜻했던

Mrs. Barrera였습니다.


어느 날, 수업의 일환으로

선생님은 우리를 학교

근처 맥도널드로 데려갔습니다.


직접 영어로 주문을 해보는 실습수업이었죠.

주문을 앞두고

손에 땀이 났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제 차례가 왔을 때,

저는 “오뤼오 맥퓰러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원의 얼굴은 어딘가 갸우뚱했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어린 마음은 조용히 주저앉았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이 제 곁으로 와

부드럽게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주문해 주셨고,

저를 향해 윙크를 날리며 말없이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언어의 본질을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틀리지 않아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하려는 마음이 먼저이고,

그걸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언어는 통한다.”


당시 서른 즈음의 그 선생님은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우리는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언어를 놓지 않은 이유는,

단지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선생님과 끝까지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중해 준 사람에게 내

말로 답하고 싶었던 그 마음.

그게 제가 언어를 붙들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Episode 2 – 도쿄의 여러 곳에서 조용해진 나


일본 유학생활 중,

외래어를 가타카나로

읽는 순간은 언제나 저를 작아지게 했습니다.


단어 하나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일본어의 억양과 강세는

마치 퍼즐처럼 느껴졌습니다.


스타벅스에 가면

앞사람의 주문을 속으로 따라 하며

입으로 중얼거려 보고,

어색하지 않게 반복해서

주문해 보기를 수십 번,

무엇을 마시고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짧은 주문 하나에도,

내 말이 통하지 않을까 봐,

창피한 마음이 앞서곤 했습니다.


디저트 가게에서 외래어 가득한

케이크를 하나씩 고르는,

발음이 이상했던 저에게

직원이 조용히 “이렇게 읽어요”라며

단어를 하나하나 고쳐주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마트에서

과일을 “풀륫”이라고 발음한 저에게

직원이 “후루츠?”라고 웃으며

정정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들은 모두 부끄럽고, 무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안에 용기가 하나 더 자라 있었습니다.

“아, 다시 말할 수 있구나.”

“조금 틀려도, 괜찮구나.”


그러다 점점 일본식 영어 발음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저 스스로도

만족스러울 만큼 발음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해 준 친구들은

제게 친절히,

조용히, 용기의 언어를 건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주 틀리고, 자주 무안하고,

아무도 내가 말한 걸 못 알아듣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들과 연결되고 싶은가?’

‘이 세계 안에서, 나로서 설 준비가 되었는가?’


긁히고, 무너지고,

다시 용기를 내게 한 원동력은

바로 그 언어 안에 있는 ‘나’였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나로서 서겠다.’

‘이들과 나는 연결되겠다.’

그 단단한 의지.

그게 다시 말할 수 있게 만든,

내가 가진 진짜 힘이었습니다.



언어의 첫 조건은

‘정확함’이 아니라 ‘의지’다


우리는 종종 발음이 완벽해야,

문장이 정확해야

상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정확함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언어는 상대의 언어를 빌려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기는 건 나의 세계,

나의 마음, 나의 서툰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이해받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