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posite Desire That Excess Calls Forth
짠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물이 당깁니다. 몸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반응입니다. 생리적인 이 단순한 현상 속에는 삶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어지면, 반드시 그 반대편을 향한 욕구가 생겨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 가깝습니다. 마치 추처럼 흔들리며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입니다.
사람들 속에 오래 머물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집니다.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며 에너지를 계속 밖으로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간절해집니다.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고독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무언가에 몰입해 밤낮없이 달리던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집니다.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과도한 긴장 상태가 오래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기력이라고 부르는 상태는 사실 마음이 보내는 휴식 요청일 때가 많습니다.
자극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강한 자극을 계속 소비하면 처음에는 즐겁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강한 것을 찾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재미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사람은 조용한 자연을 찾거나, 휴대폰을 내려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과도한 자극이 결국 평온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맛을 계속 먹다 보면 쓴맛이 떠오르고, 기름진 것을 먹다 보면 담백한 음식이 생각납니다. 몸은 늘 다른 방향의 균형을 찾습니다. 우리는 입맛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몸의 균형 감각입니다.
운동 역시 같습니다. 몸을 혹사시키면 통증이 찾아옵니다. 통증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멈추라는 신호입니다. 몸은 무너지기 전에 경고를 보냅니다. 이 경고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결국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감정에서도 이런 반작용이 나타납니다. 너무 오래 참고 살면 작은 일에도 분노가 터집니다. 반대로 감정을 계속 쏟아내며 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어집니다. 마음은 스스로 균형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흔들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이 반작용을 종종 문제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무기력해지면 자신을 탓하고, 혼자 있고 싶어지면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고장이 아니라 조정입니다. 과도한 방향으로 치우친 삶을 다시 가운데로 돌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장치입니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에 가깝습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바쁘다가 멈추고, 사람 속에 있다가 다시 혼자 있게 됩니다. 우리는 흔들림을 실패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흔들림 덕분에 중심을 찾습니다. 만약 흔들림이 없다면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끝까지 기울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 흔들리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지루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게으름인지, 아니면 과도한 자극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의 요청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혼자 있고 싶어질 때 그것을 고립으로 해석하기보다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균형을 향해 움직입니다.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지루함, 멈추고 싶은 마음, 멀어지고 싶은 감정들은 대부분 균형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신호들입니다.
결국 사람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감각입니다.
과함은 언제나 반대의 욕구를 부르고, 그 욕구는 우리를 다시 가운데로 이끕니다. 어쩌면 삶이란 끝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진자 운동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중심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