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작가는 권위자들의 '심사'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작가라고 '호명'한다면 작가가 된다.
누군가에게 심사받거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고,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거나 SNS에 올리면 된다.
그리고 대중들이 좋아하면 인기작가가 되고, 아무리 심사를 받고 대회나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인기작가는 되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나도 '작가'다.
최근에는 쓸데없는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든, 글을 쓰는 작가든 어찌됐든 기본 밑바탕이 두툼하면 좋으므로 기초학문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돈이 되는 공부 말고, 쓸모가 없어보이는 공부 말이다.
'왜 사는지 알려주는' 철학이나
'어떻게 하면 잘 사는지 알려주는' 심리학이나
'사람과 잘지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학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거 공부한다고 돈이 되겠어? 주식이나 부동산을 공부해야지' 맞는 말이다. 당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 어딘가 계속 원한다는데 어떻게 하랴. 재테크를 무시해선 안 된다. 아름다운 노년은 돈으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저축펀드와 내집마련의 기반 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쓸데없는'공부를 할 것이다.
일전에도 쓸모와 관련된 글을 쓴적이 있다. 도대체가 쓸모의 기준은 누가 정한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쓸모없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뭔가를 배우면 곧장 결과부터 기대하고, 그 결과가 돈이나 인기로 이어져야만 '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인정받는 시대다.
하지만,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다. 소트라테스나 루소, 융, 석가모니나 예수들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그들처럼 되고싶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실적인 재테크나 지금 눈 앞의 이익보다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세상에 던졌고, 그 질문들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었다.
철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심리학을 배우면 사람의 행동이 보이고, 교육학을 탐구하면 관계의 원리가 보인다. 이 기술은 그 어떤 실용 기술보다도 강력하다. 모든 일에 밑바탕에는 '사유'가 있기 땜누이다. 사유와 철학이 있는 기업은 금방 사라지지만, 생각하고 자신만의 줏대가 있는 기업은 50년, 100년을 사랑받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기초학문에 더 시간을 쏟으려고 한다. 인생은 짧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낭비할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단단해져야 작은 비바람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돈과 인기를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가고 확실한 것을 가지고 싶다. 좋은 말이나 그림들을 표현하고 싶다. 누군가에는 쓸데없는 짓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것이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쓸모없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어쩌면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