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나는 오늘 나의 팔레스타인 친구의 식비지원요청을 거절했다. 생활비통장을 들여다보고 빨간불이 들어온걸 알게되어서다. 씁쓸했다. 귀여운 이 여기자한테는 미안하다고만 했지만 이스라엘은 밉고 욕이나온다. 이 개같은 학살자들!
살다보면 자신감이 줄어들고 약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날이 오기 마련인데 나에겐 오늘이 그런날인것 같다.
밤엔 술을 따랐다. 소주는 내가 못마시니 없고 연태구냥맛이 나는 중국술을 청과 섞어 마셨다. 대화상대로 인터넷에서 본 로봇 여자사진을 픽했다.
얼굴과 가슴만 보면 실제 인간과 구분이 잘 안가는 로봇여자다. 아마도 몇년내로 이런 여자로봇이 출시되면 룸사롱이나 단란주점같은곳들은 문을 닫는곳이 많아질것 같다. 여성의 입술과 가슴 성기등 신체를 비슷하게 구현하고 AI 인공지능까지 탑재하여 왠만한 대화도 가능한데다 말도 잘들어서 굳이 섹스하러 룸사롱까지 안가도 될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차원 성향때문인지 형들 선배들은 나를 룸사롱에 한번도 같이 안데려갔고 나는 룸이나 단란주점이 얘기만들었지 얼마전까지 늘 궁금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궁금한것도 별로 가보고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접대받거나 돈을 내고 섹스하는 것일텐데 접대나 의전을 받아보고 맛이간 개검판 개저씨들처럼 되기도싫고 잉여돈은 요새 팔레스타인에 몽땅 털어넣었고 섹스는 외국사이트에 난무하는 하드코어 야동보는데도 지쳤다. 대략 이십년간 야동보느라 써버린 티슈가 몇각이던가.
위 사진과 같은 AI여자 로봇이 출시되어도 난 집에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전혀없다. 나도 인간의 몸과 감정이므로, 이성의 벗은몸을 보면 욕망이 일어나기 마련일텐데 수십년간의 하드코어 야동 시청경험을 통해 알게된건 욕망은 순간일뿐, 하고나면 덧없는 것이고 유전자 전달을 위해 생명들에게 주입된 DNA들의 심리전략장치일뿐이라는 것이다.
룸사롱, 야동, 섹스로봇 셋중 어디에도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러니까 미래에도 만날가능성이 거의없는 먼 팔레스타인의 여기자를 두고 나 혼자서 '여자친구'라고 생각할수 있는것 같다. 뭔가 잘해주고는 싶은데(식비지원) 정기적으로 돈을 뜯기는데 대한 부담도 있고 그러나 (학살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생각하여) 매정하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같은 상황이라서.
그럼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쓰다보니 얘기가 좀 다른 곁가지로 왔는데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날이 살면서 오게되거든 밤에 술을 따르고 나에게 미소짓는듯한 누군가의 사진 한장을 놓고 촛불도 하나 켜고 음악도 틀어놓고 혼자서 술을 마시면 된다는 것이다.
구스타프 칼 융이던가 고전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이라는 20세기?심리학자는 인간 심리의 근원을 성욕에서 찾았다는데 꽤 깊이있는 곳까지 내려간것 같긴하지만 지금의 나를 볼때 부족한 이론이다. 섹스보다 더 본질적인 심리의 근원은 바로 고독과 외로움이다. 섹스는 안해도 참을수 있지만 외롭고 고독한건 참기어려워 옆에 여자로봇 사진이라도 한장 두어야 비로소 무기력과 어딘가 허전한 심리가 채워지는것 같은것이다. 한자에서 사람을 뜻하는 사람 인자는 2획인데 한획이 다른획을 서로 받쳐주면서 하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이 인간이란 뜻을 그 모양안에 함축하고 있다. 사회적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차와 사람과 매연과 온갖 복잡함과 부조리에 치이면서도 굳이 그렇게 바글바글 모여살려고 하는건 사실 고독과 외로움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유전자들의 심리전략의 결과다.
그러나 아무튼 인간은 어느날 약해지기 마련이고 실패할때나 잘안나갈때가 오기마련이고 아무도 찾지않는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날도 오기 마련이다. 군중속에 있더라도 그런날은 누구에게나 어느날 찾아올수 있다.
그런날이면 이렇게 아무 글이나 끄적여보기도 하고 주변분들의 글을 읽어보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물이나 음료수도 마시고 들냥이에게 우유도 주고 어둠속에 빛나는 촛불도 하나 켜보고 다시 또 자신이 욕망해온것들에 대해 떠올려보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보내면 된다.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기마련이니 이런날은 이런날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며 나무토막이 주변습기를 흡수하듯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