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낀 자살 충동
여행지를 시카고로 정한 건, 대학 선배들과 어울리고 싶어서였다. k형과 내가, 미국에 있는 h형을 만나러 떠난 것. 형들이라면 지금의 날 이해해줄 것 같았다.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았다. 내 제안에 즉흥적으로 추진된 여행이었다. 그 무렵에도 나는 술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타이밍에도 취해있었다. 출국 35분 전,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k형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가까스로 비행기를 탔다. 역시 나야! 반성을 해도 모자란데,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말을 많이 했다. 매 순간 드립이 떠올랐고, 끝없이 떠들었다. 이륙 전에도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간다고 자랑을 했다. 아마도 조증삽화의 영향이었으리라. 굳은 얼굴로 만난 k선배는 이제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워낙 속이 깊은 형이라 내색은 안 했지만, 내가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드립을 받아줬다. 대학시절부터 드립이라면 항상 주도하는 형이기도 했고, 내 드립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분위기가 반전됐다. 속 터지는 여행에서 웃음 터지는 여행으로. 카타르 도하를 경유, 대륙에 들어섰다. 역시 나야!
미시건에서 유학 중인 h형이 차로 마중을 나왔다. 너무 반가웠다. 한겨울인데 춥지도 않았다. 엘니뇨 라니냐로 인한 이상기후가, 실은 뜨거운 세 남자가 모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쳤다. 본격 여행을 떠나기 전, 모텔에서 묵었다. 도중에 h형의 동생이 합류했고, 일행은 네 명이 됐다.
첫 여행지는 미시건에 있는 h형의 집이었다. 집에서 며칠 보내고, 차를 타고 시카고로, 다시 온타리오로 향해가는 여정이었다. 하루하루. k형을 제외한 두 사람이 내 텐션(?)에 지쳐갔다. 당황스러워 하기도 했다. 계속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 위스키 한 병을 한 입에 삼킬 정도로 울적하기도 했으니. 특히 h형의 동생이 많이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나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분위기는 불안불안해졌다.(미안해...)
여전히 잠을 못(안) 자서 여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나 홀로 숙소에 있고, 일행들은 밖으로 나가는 식이었다. 그 모습에 k형이 눈치를 채고, 나와 숙소에 머물러주기도 했다. 여행 초반의 들뜬 기분은 어디 가고, 내 마음은 점점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첫 번째 위기는 시카고에서 온타리오로 가는 고속도로에서였다. 공황장애가 이런 걸까. 태어나 처음으로,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려 했다. 이번에도 k형이 눈치를 챘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두 번째 위기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였다. 얼음과 물줄기를 보는 순간 냅다 뛰어들고 싶었다. 시원하게 죽고 싶었다. 폭포의 'fall'이 떨어지라는 명령으로 읽히기도 했다. 한편 다급해졌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었다. 나 죽고 싶은데 어떡하냐고 했다. 대부분은 어쩔 줄 몰라 했고, 몇몇은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일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신기하게도 먹고 싶은 걸 먹거나, 쇼핑을 할 때는 기분이 좋아졌다. 미친 듯이 먹고, 미친 듯이 샀다. 시카고 오로라 아울렛에선 옷을 하도 많이 사서 형들이 말렸고, 새 옷을 담기 위해 가방을 새로 샀다. 병식이 전혀 없던 시기였기에, 그때의 내가 기분장애의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 여행이 내 생애 가장 위험한 여행이었다는 것. 살고 싶어 떠났는데, 죽고 싶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