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사이를 표류하다
조울증 진단을 받기 1년 전, 나는 처음 이직을 했다. 첫 직장에서 고작 2년 일한 주니어 카피라이터 시절. 야근과 밤샘은 일상이었고, 조직에서 나는 부품, 아니 부품의 때의, 균의, 부위였다. 24시간을 훌쩍 넘게 일한 어느 날, 퇴근을 하려다 아무도 없는 회사 수면실에서 기절하기도 했다.(회사에 수면실이 있다니...) 하지만 그런 힘듦이 이직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극도로 혐오하던 사람.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던 사람. 그와 닮아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갔다. 스스로에게도, 사람들에게도. 폭음과 폭식을 했고, 매 순간 화가 나있었고, 술에 취해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기도 했고, 광화문 복판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난 이렇게 살기 싫은데.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그 무렵 내가 따르던 업계 선배가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쓰레기가 된 나는 다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직 초기에는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다. 의욕이 살아나 업무 효율도 높아졌고, 하고 싶은 것들도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내 오랜 꿈인 '작곡'이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했지만, 과거의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재연을 하는 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프로듀서 한 분을 소개 받았고, 그 분을 통해 실용음악학원을 소개 받았다. 매주 토요일 레슨을 받았다. 작곡에 필요한 피아노 레슨이 시작이었다. 코드를 배웠고, 텐션을 배웠고, 리듬을 배웠다.
열정 덕분일까. 생각보다 빨리 내 손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쓴 곡은 '팥죽'. 당시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노래였다. 웬걸. 레슨 선생님도 좋아해주셨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피식 웃기도 했다. 그 후로 꽤 많은 노래를 썼다. 정말 푹 빠져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가수에게 내 곡을 파는 상상. 그게 음원으로 나오는 상상. 사람들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상상까지, 온갖 상상을 다 했다.
그렇게 한 해는 열정의 해로 흘러가는 듯했다. 11월이었던가. 살면서 가장 오래 만난 여자친구. '팥죽'의 주인공인 친구와 헤어졌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런데 죽고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종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필 오피스텔 보일러가 터져버렸다. 눈물이 터졌다. 그 순간에도 내 안의 뜨거움은 식지 않았는지, 불현듯 악상이 떠올랐다. 피아노에 앉아 20분 만에 노래를 만들었다. 제목은 '눈물샘'. 절망의 끝에서 만든 곡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별 후 난 아티스트가 된 거야! 상상에 상상을 더해 망상을 시작했다. 밤새 피아노를 쳤다. 이웃들이 난리를 쳤다. 죄송하다고 사과문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새우니, 회사 생활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또 짜증은 왜 그렇게 나는지, 회사 사람, 특히 윗사람과 자주 부딪쳤다. 궤변을 해가면서까지 그를 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대론 안 될 것 같았다. 리프레시가 필요했다. 돈은 없지만 음악유학을 떠나면 어떨까, 잠시 고민해보기도 했다. 현실적인 대책은 여행이었다. 그렇게 떠났다. 12월의 시카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