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나를, 엄마는 왜 걱정할까

by 언어프로듀서


친정엄마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으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딸이 힘들까 봐서다.


처음부터 반대하셨던 건 아니다.

“진이는 글을 참 잘 쓰더라.”

이모들이 그렇게 말했다며 엄마는 은근히 자랑도 하셨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체험단이 목적이었다. 블로그를 키워 식당을 다니며 공짜로 밥을 먹어보겠다는 소박한 욕심이었다. 그 마음을 엄마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엄마는 내 블로그를 이웃 추가했고 가끔 들어와 글을 읽으셨다. 광고도 빠짐없이 눌러 주셨다.

그러다 일상 이야기도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열도 채 나오지 않던 시절, 엄마는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였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셨다. 딸이 재미있어하는 일이었고 딸이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경제적이라 생각하셨으니까.


그 이후로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3년을 넘겼다. 내게 글쓰기는 더 이상 공짜밥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일상의 통찰과 따뜻함을 나누는 일이 되었고,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세상에 세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되었다. 그렇게 여러 이유를 안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글 근육을 키워갔다.


글의 주제와 결이 달라진 뒤,

오랜만에 엄마가 블로그에 들어오셨던 모양이다.

아침에 문자가 왔다.

“일하랴 아이 보랴 할 일 많은데 글까지 쓰는 건 힘들겠다. 취미처럼 설렁설렁하는 거면 몰라도 매일 써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글 쓰는 건 걱정된다. 피곤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자를 읽는 순간,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멈춰 섰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서운함이 차올랐다.

‘아, 엄마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구나.’

씁쓸했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말리고 싶은 게 아니라, 지키고 싶은 거라는 걸.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그냥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잘하고 있어.”

엄마 눈에 글쓰기는 그저 딸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다. 딸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 말이다. 책을 출간했을 때도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셨다.


책이 나온 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 책 나왔어.”

기대했던 말은 “우리 딸 대단하다”였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생 많았다. 밤늦게까지 글 쓰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축하가 아니라 위로였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엄마에게 내 성취는 기쁨이 아니라 걱정거리인 것 같았다.


물론 매일 글을 쓰는 건 힘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채워지는 충만함과 기쁨은 엄마가 보지 못하는 영역이다. 엄마는 그저 딸이 편안하길, 고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니까. 여전히 엄마 눈에는 내가 애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붙들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긴 말은 하지 않았다.

“네, 알겠어요. 엄마.”

설명한다고 해서 엄마의 걱정이 사라지지도, 마음이 바뀌지도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걱정해 주는 엄마가 있어, 여전히 행복하다. 엄마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셨고 그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엄마는 내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신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