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 제사 안 지낸대. 엄마가 전 사 오지 말래.”
남편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진짜? 어머니가?”
“응. 어제 전화로 말씀하셨어.”
어머니 살아생전에 듣게 되리라 생각도 못 한 말이었다.
팔십을 바라보시는 시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명절 음식 차리는 일을 힘겨워하셨다. 며느리인 내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워주길 바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기대를 채워드리지 못했다.
“어머니, 저 음식 잘 못해요. 그냥 전은 사 올게요.”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선뜻 동의하는 표정은 아니셨지만 더 말하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그다음 명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나물은 네가 해라.”
“어머니, 힘드시면 나물도 사 올게요.”
“배워서 하면 되지.”
“아니에요. 배워도 저 못해요.”
솔직히 말하면, 못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았던 게 더 정확하다. 나는 제사 문화에 공감하지 못했다.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고생해야 하는 구조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명절에 전도 사고, 나물도 사서 제사를 지냈다.
시댁은 전형적인 유교 집안이다. 지금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시아버지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분이셨다. 그런 분 곁에서 평생 제사를 지켜온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조상을 모시는 일이자 가정을 지키는 방식이었고 본인의 역할이자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이번 명절엔 제사 안 지낸다”라고 했다.
솔직히 기뻤다. 결혼 13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이 휴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며칠 뒤, 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주택연금 그거 걸어줘. 매달 받아 써야겠어.”
“왜요, 엄마?”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해줘. 억울해서 안 되겠어.”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누나들이랑 다퉜나 봐.”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제사를 내려놓겠다고 말해놓고도 마음까지 놓지는 못한 게 아닐까.
동네 어르신들과 이런 말을 나누셨을지도 모른다.
“자식 놈 다 필요 없어. 우리가 죽으면 제사나 지내주겠어?”
어머니에게 제사는 사라질 전통이 아니라 아무도 이어주지 않을 내 삶의 흔적이다.
아들은 “네, 알겠어요”라고 담담하게 답했지만,
어머니는 아마 이런 말을 기대하셨을 거다.
“아니야, 엄마. 제사는 계속 지내야죠.”
그 말 한마디였다면 어머니는 억울하다며 전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사 없는 명절이 좋은 며느리.
못내 서운하신 어머니.
우리는 같은 제사를 두고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에게 제사는 평생을 지켜온 질서이자 역할이었다. 나에게 제사는 굳이 이어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의무였다. 어느 쪽이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다를 뿐이다.
그래도 이번 명절엔 어머니의 마음을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전은 못 부쳐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일은 정성껏 준비해 갈 수 있다. 음식은 못 해도 어머니 말씀을 끝까지 들어드릴 수는 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어머니의 서운함까지 가볍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