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조건 내 편이었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가진 회식 자리에서 동기 언니가 내게 건넨 말이다. 고기를 자르다 말고 언니를 바라봤다. 표정은 다소 멋쩍어 보였지만 진지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내 편이라니. 이 나이에도 네 편, 내 편을 가른다는 게 어쩐지 웃음이 나서 피식 웃었다.
“언니, 우리가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하지만 언니는 웃음으로 넘기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며칠 전, 언니는 A팀 담당자와 업무 분장을 두고 크게 부딪혔다. 타 기관에서 발송한 공문으로 서로 자기 팀 일이 아니라며 언성이 높아졌다.
“기존 업무도 워낙 많아서 더는 받을 수 없어요.”
“일이 많지 않은 팀이 어디 있나요. 업무는 양이 아니라 성격으로 나누는 거죠.”
“업무 성격으로 봐도 그쪽팀에 더 가까워 보이는 데요? 시청에서 온 공문이잖아요.”
“대외협력 업무가 모든 기관을 상대하는 건 아니죠.”
며칠을 그렇게 팽팽히 맞섰고,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과 상처만 남았다.
문제는 둘 다 내가 직장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번 일에서는 A팀 담당자와 더 자주 소통했다. A팀 업무를 해보기도 했었고, 업무 분장에 대한 판단 역시 그쪽이 맞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사 밖에서도 함께 운동하는 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 모습이 언니 눈에는 내가 자기편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언니는 평소와 달리 차갑게 지나쳤다. 늘 먼저 “커피 한 잔 할래?” 하던 사람이 그날은 바쁘다며 스쳐 갔다.
‘아, 언니가 서운해하는구나.’
회식 자리에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돌아온 말이 바로 “너는 무조건 내 편이었으면 좋겠어”였다.
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지. 하지만 A팀 담당자와 언니 사이가 멀어질수록, 내가 언니 쪽에 서 있어야 한다고 믿는 듯했다. 마치 빙하가 갈라져 두 동강으로 나뉠 때, 언니 쪽에 서 있어야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그만큼 언니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언니, 저는 언니 편도 아니고 A팀 담당자 편도 아니에요. 그냥 업무적으로 판단했어요.”
“알아. 그거 아는데.. 그래도 좀 서운하더라. 우리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우리의 관계가 있잖아.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까 네가 그 사람 편인 것 같아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연차 시절부터 함께해 온 우리의 시간이 떠올랐다. 언니 마음이 이해됐다.
사회에서 ‘우리 더 친하니까 무조건 내 편 해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직장은 친분으로만 움직이는 곳이 아니니까. 업무는 업무대로, 관계는 관계대로 분리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어디 계산기처럼 정확히 작동하던가. 쌓아온 시간은 관계에서 절대적인 믿음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언니는 나를 무조건 지지해 줄 든든한 동반자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곁에 있는 내 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는 다른 아이와 싸우고 돌아와 “너는 내 편이잖아. 내 편 들어줘야지”라고 말했고, 나는 아무 고민 없이 친구 편을 들어줬다. 우정이란 그런 거라고 믿었다. 옳고 그름보다 내 편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된 지금, 내 편의 의미는 예전과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은 누군가가 아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말이야, 누군가 무조건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나이에도.”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가끔은요.”
언니와 A팀 담당자는 결국 업무 분장 문제를 정리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절충안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도 시간이 지나며 옅어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한다. 언니의 편이기도 하고, A팀 담당자 편이기도 하다.
초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날 선 비평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라지만, 옳고 그름을 잠시 내려두고 ‘내 편’이 되어 달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해요. 날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