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팀장이 되고 싶다는 착각

by 언어프로듀서


OO교육지원청, OOO팀장. 인사발령 통지서에 찍힌 소속과 직함을 보는 순간 묘한 비장함이 차올랐다. 12년 동안 실무자로 일하며 마주했던 무능하고 꼰대 같은 팀장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나는 분명 다를 것이라 믿었다. 아니, 달라야 했다.


실무자 시절부터 마음속에 쌓아온 기준이 있었다. 팀장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규칙들. 그것만 지켜도 좋은 팀장이 될 거라 확신했다. 어디를 가든 모임을 이끌던 사람이었고, 리더십 또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다. 회의 시나리오 없이는 한마디도 못 하던 팀장. 회의 이틀 전이면 시나리오를 출력해 책상 위에 올려드려야 했다. 출장 때마다 내 차로 모시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팀장도 있었다. 출장지가 울산일 때조차 KTX를 타지 않았다. 그 덕에 경기도에서 왕복 8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팀장이 되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그 다짐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안에 이상적인 팀장상이 만들어졌다.


좋은 선배, 좋은 팀장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출근한 첫날부터 온화하고 부드럽게 팀원들을 대했다. 회의 시나리오는 받지 않았다. 회의는 팀장이 준비해서 이끌었다. 그 사이에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또 어떻다는 말들이 귀에 들어왔지만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다며 애써 흘려보냈다. 소문으로 팀원을 재단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난보다는 칭찬으로 팀을 이끌고 싶었다. 나 역시 팀장들이 잘하는 것만 봐주고 “잘한다, 잘한다” 말해줬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믿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은 없고, 팀장의 역량도 키워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욕 만렙, 열정 과다의 신출내기 팀장이 마음가짐만으로 팀을 이끌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노력과 역량만으로 팀을 이끌면 된다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담당자일 때는 내 업무만 보면 됐지만, 팀장이 되자 팀원들의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되었다. 살펴야 할 업무만 15가지가 넘었고, 방향을 잡고 흐름을 보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했다. 게다가 저경력 팀원에게는 하나하나 설명하고 기다려줘야 했다. 실무를 안 한다고 신경을 덜 쓰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동시에 떠안는 자리였다.


시급하지만 정확해야 하는 일에서 팀원이 따라오지 못할 때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방향이 맞는 거예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길에서도, 사무실에서 그 직원을 마주할 때도 마음이 불편했다. 좋은 팀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나, 좋은 팀장은 못 될 것 같아.”

친구는 잠시 듣더니 되물었다.

“그럼, 걔네들은 좋은 팀원이야?”


그 질문 앞에서 말이 막혔다. 조직에서 좋은 팀장과 좋은 팀원이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며칠 뒤 팀원이 다시 보고서를 가져왔다. 예전 같았으면 잘했다는 말부터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구체화가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알려주고, 내일 오후 12시까지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팀원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가져온 보고서는 확실히 나아져 있었다. 과장님 결재 자리에서 팀원은 칭찬을 들었다. 팀원 얼굴에 스친 뿌듯함을 보며 비로소 팀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다.


좋은 팀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팀장이 되는 것.

그게 팀장의 역할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팀장은 팀장의 역할을 하고, 팀원은 팀원의 역할을 한다. 그 사이의 간극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었다. 팀장이 팀원이 될 수 없고, 팀원이 팀장이 될 수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돌이켜보면 좋은 팀장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좋은 팀장이란 얼마나 주관적인 말인가. 결국은 팀원들에게 “팀장님 너무 좋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욕 안 먹는 상사보다 중요한 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상사다. 이곳은 회사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 성과다. 관계와 감정은 조직을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일 뿐, 주가 될 수는 없다.


팀장 4년 차. 샛병아리 팀장도 조금은 무르익었다. 이제는 욕을 안 먹겠다는 다짐보다 욕을 먹더라도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좌충우돌이지만 우리 팀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안다.

좋은 팀장이 되려 애쓰는 것보다, 제대로 된 팀장이 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