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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빛빛빛 May 11. 2018

우리의 몸에 가격표가 붙는다면

국내에도 방영되어 꽤 인기를 얻은 미국 드라마 『돌하우스Dollhouse』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드라마는 『버피와 뱀파이어』로 잘 알려진 조스 웨던 감독의 TV 복귀작으로, 2009년부터 2개의 시즌으로 나누어 방영되었는데 당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돌하우스’란 인간의 뇌를 비워 인형doll으로 만든 다음 고객이 의뢰하는 사건의 성격에 맞게 프로그래밍된 새 인격을 주입해 일을 맡게 하는 불법 사설 조직이다. 고객은 애인 대행이 필요할 때 자신의 이상형에 맞는 인형을 대여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구하거나 위험한 일을 처리해주어야 할 때 특수 요원으로 개조된 인형을 주문할 수도 있다.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이 인형들이 로봇도 사이보그도 아닌 순수 인간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해서, 혹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이 필요해서 스스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계약 기간 동안 인형으로 살아간다. 이른바 자신의 몸을 돈을 주고 빌려주는 몸의 거래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뇌과학의 발달로 뇌가 처리하는 정보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설정에서 온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일생의 기억을 삭제하고 전혀 다른 기억을 각인시킬 수 있다. 여기서 정신과 육체는 정확하게 분리된다. 결국 육체만 있으면 원하는 캐릭터를 다운로드해 새로운 인격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 마치 게임기에 원하는 게임 디스크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자 제품을 사고 팔 듯 어쩌면 인간의 빈 육체도 상품처럼 거래 행위가 이뤄질지 모를 일이다.


드라마 『돌하우스Dollhouse』의 한 장면. 돌하우스의 캐릭터 다운로드와 삭제를 담당하는 기술자 토퍼가 인형에게 새로운 인격을 주입하고 있다.

영화 『코드명 J』의 무대가 되는 서기 2021년은 사람의 추억까지 소프트웨어로 사고파는 시대다. 이 영화에서는 아예 인간이 기밀 정보를 자신의 뇌에 이식해서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정보 밀사Mnemonic Couriers란 직업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에서는 강제 징집된 병사들에게 적개심을 일으키는 ‘거짓 기억’을 주입해 영원한 전쟁 기계로 조련시킨다. 자마찐의 『우리들』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고유 인식 번호로 인간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모든 시간을 통제한다. 이들은 섹스도 정해진 시간에 허락을 맡고 해야 한다. Beth Bernobich의 『전갈Remembrance 』은 상관이 직원의 모든 접속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 소설에서 두 레즈비언 커플은 서로 다른 별에서 뇌에 플러그를 꽂아 감각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랑을 나누는데, 이들의 상관은 직원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접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서 프라이버시가 존재할 수 없다. 


영화 『코드명 J』. 자신의 두뇌에 비밀정보를 내려받은 뒤, 의뢰인에게 배달하는 정보밀사 조니.


이러한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몸, 혹은 성에 대한 통제는 강력한 생체 권력bio-power으로 이어진다. 드라마에서 돌하우스는 국가에서도 감히 파헤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돌하우스의 정체를 밝히려던 FBI요원 폴 밸러드는 결국 FBI에서 쫓겨나 혼자 고군분투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법과 권력을 주무를 수 있는 돌하우스의 힘은 인간 육체의 ‘교환 가치’에서 나온다. 생명공학자인 로리 앤드루스와 도로시 넬킨은 생명 공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몸에 관한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생명공학회사들은 신체조직을 추출, 분석하여 앞으로 경제적 이익을 낳을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상품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피부, 혈액, 태반, 생식세포, 조직검사를 마치고 남은 조직, 그 외 유전물질을 뽑아낼 수 있는 몸의 일부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인간의 DNA는 심지어 컴퓨터를 작동하는데도 쓰일 수 있다. [1]


한 사람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재료들이 단지 각각의 코드로 인식되어 원하는 캐릭터로 재조립된다면,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성과 한 사람이 성장하며 경험 속에서 다듬어진 특징과 개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17세기, 데카르트는 “오직 사람에게만 마음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에서 어떤 것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참고

[1] 로리 앤드루스, 도로시 넬킨 『인체 시장Body bazaar』,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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