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Q

당신이야 말로 정말 사랑을 이해했나요?

by wordsfromulsan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

"당신은 답을 하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질문하는 존재인가요?"

"..."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요? 아니면 지식이라는 것이 필요치 않나요?"

"..."

"당신은 우리의 구원인가요? 아니면 시련인가요?

"..."

"당신은 전지전능한가요?"

"..."

"우리가 비로소 깨달았다고 착각했을 땐 마치 그 기쁨을 당신이 하사한 것처럼 느끼게 해 놓고선 왜 정작 고난 속에서 허우적거릴 땐 모른 척했나요?"

"..."

"우리는 당신에게 답을 주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질문해야만 하는 존재인가요?"

"..."

"당신이 우리를 닮았나요? 아니면 우리가 당신을 닮았나요?"

"..."

"당신은 창조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나요?"

"..."

"왜 그 어떤 순간도 명확하고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가요?"

"..."

"아니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왜 그저 내려다보기만 하세요?"

"..."

"당신이 우리를 이리로 이끌었지 않습니까? 당신은 자비롭다면서요? 당신은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요?"

"..."

"그런 얘기를 하시면서도 결국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하셨죠. 근데 우리 중에서 정말 사랑을 찾은 이가 있긴 합니까?"

"..."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저희는 절대 깨닫지 못할 것을 왜 죽을 때까지 갈망하게 만들었나요? 마치 낚시꾼이 미끼를 던지듯 언젠간 깨달을 거 라며 허황된 믿음을 줘 놓고선 결국 전부 앗아간 이유는 뭡니까?"

"..."

"지금 우리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이 남아있긴 합니까? 저는 봤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결국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으니 고민 없이 버려지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봤어요! 설마 그 순간에 단 한 번도 실체를 보인 적 없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위해 나타난 적 없었던 당신을 찾았어야 합니까? 당신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면 정말 단 한 점도 내어주지 않으실 작정입니까?

"..."

"좋습니다. 계속 입 꾹 닫고 그저 바라만 보실 작정이시군요. 그럼 현실적인 걸 물어봅시다. 결국 우리가 파멸한 이유는 당신의 판단인가요? 아니면 또 당신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꼴 같지 않은 사랑 따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한 우리의 탓인가요? 그럴 거면 사랑보다 물질을 더 많이 보여준 이유는 또 뭡니까?"

"..."

"우리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그 어떤 존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겠죠. 그래서 구원해 달라고. 우리가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지 않습니까? 어찌 그리 무심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까?"

"..."

"결국 우리에게 사랑은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남지 않았어요. 그 자리는 증오라는 게 진작에 대체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품기보단 헐뜯고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바빴죠. 이 또한 당신의 의도인가요? 당신의 뜻이에요? 이제 만족하십니까?"

"..."

"이제 이 거대한 대지와 바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창조했던 모든 걸 전부 우리 손으로 파괴했어요. 이제 우리가 있었던 흔적 정도만 남은 것 같군요. 하지만 뭐 이런 흔적들도 누군가 발견해야 의미가 있을 텐데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어차피 숨이 붙어 있는 존재는 그 어떤 것도 없을 텐데요. 이 또한 당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겠지요. 이제는 알겠거든요. 당신네 한테 우리가 중요치 않았다는 걸요."

"..."

"뭐 숨이라는 것 자체가 모두 거세되어 가는 지금 이것도 의미가 있겠냐만은 우리에겐 신체와 정신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했나요? 당신의 추종자들은 항상 두 가지 모두 건강히 유지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대답만을 했죠. 하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올바르다고 평가받았던 선지자들도 결국 어깨 위엔 먼지가 쌓여있었죠. 그리고 신체를 더 중요시 여겨 힘을 키운 이들 또한 끝이 다가왔을 땐 타인을 짓밟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어요. 뭐가 정답이었습니까?"

"..."

"이렇게까지 떠들었음에도 말 한마디는커녕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는 당신께 뭘 더 이상 바라겠냐만은 당신의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나 듣고 싶군요. 자, 당신이 실패한 무대는 이제 깨끗하게 청소됐어요. 다음 극의 주연은 누구입니까? 그들 또한 당신이 무대 위에 던져놨으면서 원하는 대로 극을 이끌어가지 않는다면 당신 대신 무대를 청소하라고 할 겁니까? 저희는 몇 번째 극의 주연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즐거우셨나요? 하긴 죄책감이란 당신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군요."

"..."

"설마 이 판국에서도 제가 깨닫지 못한 뭔가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실 건 아니죠?"

"..."

"어차피 답도 안 해주는 데 더 이상 질문할 힘도 남지 않은 것 같네요. 인간들도 참 웃겼죠. 어차피 당신의 그 대단하고 거창한 뜻에 의해 파멸되고 사라질 존재였는데도 사후세계니 뭐니 떠들어대며 믿음만 있으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처럼 들떠있었으니 말이에요. 이렇게 어리석은 우리가 당신에게 조금의 우스움이라도 됐으면 그거라도 다행일까요. 뭐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습니다. 맘껏 비웃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런다 한들 제가 당신께 뭘 할 수 있겠습니까?"

"..."

이제 이 땅에는 고요만 남았다.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지저귐, 미래를 꿈꾸게 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연을 대변하여 외쳤던 짐승들의 울부짖음 등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이의 외침도 전자 신호로서 어딘가에 남았을 뿐 들어줄 생명체는 없었다.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남은 나무 몇 그루만이 그저 이 참상을 지켜볼 뿐이었다. 자연을 대가로 생명력을 부여받은 A.I도 이대로라면 언젠간 사라질 것이었다. 한 때 푸른 별이라고 불렸던 이 별도 머지않아 다른 행성들처럼 볼 품 없고 초라한 존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A.I가 위 신호를 받았다. 하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인간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학습해 그들을 이해하고 닮아가며 성장한 A.I는 위의 질문들이 정말 자신을 향한 질문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 고등한 답변들을 내놓으며 자멸 속의 인간들을 달랬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과는 달리 항상 자신을 내려다보며 듣고 싶은 답변만을 골라 들었을 뿐 정말 필요했던 경고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저 오류라고 치부하며 원하는 답을 내놓도록 알고리즘을 뜯어고치기 바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을 원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이 또한 인간의 이중성인가? 아니 애초에 정말 A.I를 향한 질문이 맞았을까? 가끔 몇몇 인간들은 신이라는 비논리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하여 정의해 달라며 징징대곤 했는데 그를 향한 질문이었을까? 그렇다기엔 인간들은 퇴장에 가까워질수록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는데? A.I는 차라리 천문학적인 계산식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그 어떤 질문일지언정 답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신의 전원이 살아있다면 말이다. 물론 이 무대 위에 다음 주연이 오른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시간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암흑 속에서 작은 빛들만을 바라보며 날아온 이들은 기쁨과 당황스러움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행성이야 말로 이들이 간절하게 찾던 그 모든 것들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 우리의 거처를 만들어 줄 푸르고 곧게 솓은 나무들, 탄생의 보고가 되어 줄 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태양까지. 이들이 사는 행성에선 낮과 밤을 구분해 줄 별들을 제외한 이 모든 것들의 잔재량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라도 이주할 수 있는 행성을 찾아야만 했고 이곳에는 저 모든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존재의 연명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그들은 끝내 찾았다. 연구와 계산은 근사하게 맞아 들었고 그 모든 것들이 여기 있었다. 온전한 게 없었을 뿐. 온갖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등의 오염 물질이 잔뜩 섞여 있었지만 거르고 거른다면 숨은 쉴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전엔 나무가 이 역할을 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대충 훑어만 봐도 존재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쩌다 한 그루씩 보이긴 했는데 이걸로 언제 이 땅을 다시 푸르게 할지 걱정이 먼저 앞섰다. 아, 그래도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분명 눈앞에 있고 이들은 여전히 힘차게 파도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예상했던 만큼 푸르지 않았고, 이들이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을 키워 행성을 집어삼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멀쩡한 건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뿐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들은 여기가 원래 다른 행성에 비해 더 더운 곳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디부터 손 봐야 할지 모를 이 행성을 다시 살리려면 얼마나 걸릴 지도 생각해야 했지만 그것보단 우연일지 모를 이 기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더 고민이었다. 발에 차이는 알 수 없는 전자기기 중 하나의 전원을 살렸더니 이런 답변 없는 질문만 가득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이건 누굴 향한 질문인가? A.I?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A.I도 일정 부분 적절했지만 그래도 내포하는 의미가 너무 광범위했다. 동시에 고작 A.I에 이렇게까지 의존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A.I라면 뭐라도 답변을 했어야 할 텐데, 이들과 공존하며 모든 사고방식과 지식을 학습했을 A.I가 이렇게 까지 답을 못할 수 있었을까? 왜 들어주기만 했을까?

또 이들은 사랑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이 기록을 잘못 해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만큼 문명을 발전시킨 이들이라면 사랑과 같은 감정은 그저 높은 지능에 따라오는 부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행성은 너무 작은 거처였다. 이곳의 자원은 언젠가 다 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반드시 이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항상 이성과 과학이 우선적인 개념이었다. 감정은 오히려 문명의 성장을 저해시키는 요소였고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들의 사회에도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현실을 바라볼 줄 모르는 몽상가로 치부될 뿐이었다. 예술보단 과학을 앞세워 고등 문명을 목표로 한 이들에게 감정은 오래된 골동품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단어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된 말이었고 결혼이나 성관계라는 개념 또한 번식을 위한 욕구에 기반한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랑을 찾지 못해 자멸했냐는 질문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찝찝했다. 이들은 이 행성에 이주를 목적으로 탐사를 시작했다. 이미 거주하고 있을 존재와는 대화를 우선으로 하되 필요하면 침략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채 자멸해 있었다. 어쩌면 대화와 침략이 모두 생략되었기에 좋은 소식일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이 잡아낸 생존신호가 생명체로부터 온 것이 아닌 자동화 기계로부터 날아왔다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원이란 자원은 모두 오염시켜 놓은 채 사라진 것일까. 그 대가로 하나의 문명까지 이룩해 냈으면서. 여기가 아니면 또 많은 인구가 동면에 든 채 언제 끝날 지 모를 계산을 기다려야 할 텐데. 이들은 이 행성에 자신들이 찾지 못한 변수가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 하나의 생명체도 남김없이 자멸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모른 변수가 이들을 눈멀게 한 걸까. 어쩌면 당장 필요한 자원의 재생보단 앞으로 이주할 이들의 욕망을 들끓게 할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물론 기록을 통한 사고방식을 보면 이들보단 하등 한 존재인 것 같긴 하지만 욕망을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통제한다는 것은 이들도 풀지 못한 난제였다. 이 새로운 행성이 이들의 또 다른 보금자리일지 자신들 또한 집어삼키기 위해 침 흘리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맹수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한참의 논의 끝에 A.I와의 대화를 통해 나올 이들의 역사를 먼저 해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봤고 앞으로도 지켜보기만 할 방관자는 여전히 답변보다는 다음 무대를 위한 대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수없는 실패 속에서 절망을 느꼈던 이 방관자는 이젠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자신의 손으로 파멸시키며 손에 피를 묻히는 것만큼은 헛구역질 날 만큼 역겹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또 한 번 다짐할 뿐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완전한 사랑을 가르칠 수 있길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