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의 투정과 어리광. 그리고 진실 혹은 거짓.
거기는 평안하신가요.
당신께 편지를 올린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어쩌면 처음일까요.
신을 추종하는 자들은 당신이 저희는 아직 닿을 수 없는 곳에 살아있다고들 합니다.
거기에 계실 당신의 기억 속에 단 한통이라도 제 편지가 있길 바랍니다.
아니 사실 그런 일은 없길 바랍니다.
이 편지 또한 닿지 못할 글로써 남길 바랍니다.
부디 삶이 끝난다는 것은
우리가 쓰는 전자기기의 전원 버튼이 그러하듯
혹은 엔트로피가 절정에 달한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원이 아닌 끝이 존재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게 세상은 너무 가혹합니다.
너무 이성적이고 잔혹하며 낭만과 감성 따윈 존재하지 않는 허상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빨라 쫓아가기만 해도 지칩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살아남으라며 등을 떠밉니다.
여전히 뛰기도 힘든 제게 날지 못하면 죽는 거라며 저를 여기저기 던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당신은 우리를 길러내고 지켜냈습니다.
어느 드라마에서 쓴 표현처럼 성실한 무기징역수와 같이
매일같이 때맞춰 노동하며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왔습니다.
어찌 그렇게 살아가셨는 지를 생각하다 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수없이 많았을 역경을 어떻게 견뎌내셨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셨나요.
당신도 저와 같이 무릎을 꿇고 싶었나요.
당신도 저와 같이 도망치고 싶었나요.
그래서 인가요.
그래서 입니까.
그래서 그리 빨리 전원을 꺼버리셨습니까.
당신은 강하셨잖아요.
당신은 견뎌내셨잖아요.
당신은 뭐든 척척 해내셨잖아요.
그럼 그것도 이겨내셨어야죠.
그럼 그깟 병마도 이겨내셨어야죠.
고작 염색체의 기형이었습니다.
눈에 뵈지도 않는 오류였을 뿐입니다.
온 마음을 찢어대는 역경도 다 헤쳤으면서
그 따위 미세한 오류에 그렇게 허망하게 간다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당신은 아버지였잖아요.
당신은 가장이었잖아요.
당신은 우리 가족의 울타리이자 집이었잖아요.
지금처럼 누구보다 한없이 망가지고 싶은 저를 안아줄 수 있는 훌륭한 어른이셨잖아요.
무릎 꿇고 울고 있는 제 손을 잡고 일으켜주실 수 있는 유일한 남자잖아요.
당신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당신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처럼 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처럼 될 수 없습니다.
단지 피가 섞였을지언정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뻔한 이유는 아닙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당신이 제게 어떤 가르침도 없이 휙 하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당신이 가정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잠만 잤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건 애써 쳐다보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망가지고 부서져 한없이 초라해졌습니다.
어차피 제가 이런다 한들 당신이 뭘 어쩌겠습니까.
그저 전원이 꺼진 채 땅 속에 갇힌 당신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이 편지조차 당신에게 정말 닿겠습니까.
그저 메아리처럼 날아와 제 가슴에 비수로 다시 꽂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저를 빨리 떠난 만큼.
딱 그만큼의 어리광과 거짓말은 받아주실 수 있으시겠죠.
딱 그만큼만.
딱 오늘 하루만.
제 투정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식은 아무리 커도 부모에겐 아이 같다고 하잖습니까.
딱 그 정도의 수준이라 치고 오늘은 말썽 좀 피우겠습니다.
다 당신 탓입니다.
다 당신이 제게 가르침 없이 떠난 탓입니다.
오늘만 그리 하겠습니다.
-장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