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는 왜 인간의 내면에 선과 함께 악도 담았는가?
아들은 밤이 싫었다. 너무 무서웠다. 언제부턴가 잠에 들기만 하면 악몽이 그를 괴롭혔다. 알 수 없는 검은 형체의 존재는 매일 밤 그를 괴롭히며 숨이 넘어가 듯 비웃어댔다. 어느 날은 그를 밤 새 추락하게 만드는가 하면 더러운 벌레들이 가득한 방에 가둬 신체의 온갖 구멍으로 벌레가 드나들게 하기도 했으며 어떤 날은 많은 사람들 앞에 발가 벗긴 채 세워둬 끔찍한 수치심을 느끼게도 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던 그에게 나체의 모습을 다수에게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해야 하는 거대한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젯밤엔 새벽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는데 분명 누군가 그의 이불을 젖히고 그를 침대에서 끌어내리려고 했다. 아무도 없는 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누군가 그에게 접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들은 잠드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아들의 부모는 이 사실을 듣긴 했지만 그저 학업이나 학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사춘기 중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나 싶은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다. 부모에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꿈에 대한 투정보단 아들이 가져오는 성적표 속 숫자들이나 앞으로 아들이 가게 될 대학의 수준이 더욱 고민이었다. 결국 아들은 더 이상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부모는 사교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성당의 미사 시간에 하는 형식적인 기도로 회복을 기대하기로 했다.
이런 일상이 지속되던 어느 밤 부모는 아들의 방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급하게 뛰어들어간 아들의 방은 너무 어두웠다. 단순히 불이 꺼져 있어 어두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어둠이라는 존재가 그들 앞에 서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문이 잠겼다.
벽에 걸어둔 십자가의 예수 머리는 바닥을 향하고 있었으며 아들의 동공엔 초점이 없었다. 그저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부모도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며 그 어떤 대처도 할 생각을 못했다. 어둠은 그 모습을 보며 굉장히 큰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힘에 도취되어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마치 자신의 능력을 보고 감탄해달라는 듯 먼저 세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아들에겐 성적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부각했고 엄마에겐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빠는 자신이 정말 가정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지, 자신이 벌어다 주는 돈에 가족들이 정말 감사해하고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살아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어둠은 이들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한 뒤 쾌재를 질렀다. 그러고는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부수고 여기저기 던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을 향한 신성모독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마치 신을 향해 당신은 틀렸다고,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떠들어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모상에선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신을 향해 당신의 가르침은 틀렸다고 쉴 새 없이 비꼬아대는 그 순간 아들은 성당에서 매주 외웠던 기도문 하나를 떠올렸고 본능적으로 내뱉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매일 밤 꿈속에서 고통받던 아들은 언젠가 한 번은 이 기도문을 들은 신이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참이었고 단어 하나씩 겨우 내뱉고 있었다. 그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밝은 빛이 방을 가득 채웠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다. 방 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열려있었고 십자가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부서지고 여기저기 휘날렸던 물건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본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세 가족은 그대로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다.
그 뒤로 아들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잠에 든 뒤 악몽이 벌어지진 않았다. 다만 그날 이후 가정 내 공기의 흐름이 바뀐 걸 느끼고 있었고 악몽이 꿈에서 현실로 옮겨갔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영원히 숨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직장에서의 밀회가 자신의 이마에 주홍글씨로 새겨졌다. 더 이상 가족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그날부터 생긴 의구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가족들이 내 희생을 정말 이해하고 있을까? 설마 아들이 나를 실패한 아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내에게 나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긴 할까? 연애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를 존중하고 내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남편이라 후회하는 건 아닐까? 다른 집의 아빠나 남편과 나를 비교하며 하찮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부터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둠은 또 다른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수천년간 신의 그림자에 갇혀 분노를 키워온 존재에게 인간의 나약한 영혼은 늘 달콤한 먹잇감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나약한 희생양을 찾았고 이 가족을 잘 조각해 신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어둠은 자신이 또 한 번 실패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았다. 저 변태 같은 신은 인간의 본성 속에 선한 마음뿐만 아니라 악한 마음도 같이 숨겨놨기에 적당한 먹잇감만 찾는다면 그 악한 모습을 끌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정적으로 신을 넘어서려는 시도만을 막았을 뿐 그 외에 어떤 것도 저지하지 않은 것이 마치 자신의 의식을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재롱처럼 바라보며 비웃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차라리 자신에게 분노하거나 꾸짖었다면 그와 비등한 위치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악한 의식을 한들 신은 그저 콧방귀나 뀌고 있는 것 같은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어둠은 확신했다. 그 작은 소년이 내뱉은 기도문이 들려서 자신의 의식을 제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자신이 신을 넘어서기 위해 떠들었던 조롱과 비꼬아댄 말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인간이 자신의 의식으로 인해 흉터가 남는 것보단 신이라는 존재의 권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